2년전인 91학년도 전기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난 직후에 친구에게 들은 실화다. 2남1녀를 둔 그 친구는 그보다 2년전에 장남이 전국 최고 득점자그룹이 몰린다는 최고 명문대학교의 법과대학에 손꼽을만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해 그 집에는 입시고통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친구였다. 그러나 대학입시는 그 집에도 역시 「입시」였던 모양이다.딸이 명문 여자대학에 합격했다고 해서 축하 술잔이라도 나누려고 만난 그 친구는 『입시지옥의 문턱까지 갔다왔다』며 허풍부터 떨었다.
실화의 내용은 이렇다. 입학원서를 쓰기전 고3 담임이 불러 학교엘 갔다. 추천하는 학과는 딸이 가겠다는 대학의 하위 성적그룹에 속하는 곳이었다. 10차례의 모의고사 성적표와 내신 4등급으로,학력고사에서 실수가 없어야 그것도 가능할 것 같다는 눈치였다. 딸의 적성이나 전공하고 싶어하는 학과는 물론 아니었다.
대학을 낮출 수 밖에 없었다. 3일을 설득했지만 딸 아이는 고집불통이었다. 원서접수 마감날까지 학과를 못 정하고 하오 2시반께 대학엘 갔다. 남들이 한다는 눈치지원을 해볼 셈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어려웠다.
하오 4시가 돼서 접수대열의 끝에 섰다. 마침 폐쇄회로 TV화면에 하오 3시30분의 접수상황이 나오고 있었다. 고교가 추전한 학과는 이미 1.8대 1이었고,딸의 적성 학과는 40명 모집에 23명이 접수한 상태였다. 기왕에 자신이 없을 바에야 네가 가고 싶은데 응시해 보자고 해봤다.
『아빠! 거기는 1등급들이 가는데야…』하면서 망설였다. 그래도 아직은 『덜 몰렸잖아』 했더니 딸도 그러자고 했다.
마감 15분을 앞둔 하오 4시45분에 받아든 접수번호는 「43번」. 3명을 초과했으니 일단 안심했다. 그러나 저녁 9시 TV뉴스에 방영되는 마감결과는 83명이 지원해 2.07대 1이었다. 고교가 추천한 학과는 2대 1. 딸의 말처럼 그 학과는 1등급이 가는 상위그룹 학과였고 20%의 제2지망자까지 계산하면 실질 경쟁률은 2.6대 1이었다. 눈치지원이 결국 상향 소신지원이 되고 말았다.
불합격은 뻔해 보였다. 고심끝에 얻은 결론은 딸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 최고실력을 발휘케 할 수 밖에는 다른 묘안이 없었다. 새벽 6시20분에 학교에 가는 딸을 차에 태우고 20분 걸려가는 학교길에서 격려를 했다. 모든 책임은 지원을 잘못하게 한 아빠에게 있다. 실패하면 후기대학도 좋고,재수해도 괜찮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보라고 용기를 북돋워줬다. 3일째가 되자 아이는 침착해졌고 시험 4일전까지의 「17일간 동승 학교길」에서 딸 아이는 자신감을 되찾은 듯이 보였다.
그해의 학력고사는 수학문제가 유난히 까다로웠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수학에서 10∼15점을 덜 받았으나,아이는 오히려 20점을 더 받았고 다른 과목에서도 제 실력의 최고 점수를 땄다. 저희 학교에서간 1등급들이 다 실패했는데도 4등급이 유일하게 합격하는 기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억세게도 입시운이 좋은 집이라고 웃으며 들었지만,그 친구가 딸을 격려한 방법은 하도 지혜로워 보여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자녀들에게 자신이 없는 아버지,아무말도 할 수 없는 아버지,특히 대학입시에 관해서는 학교에 일임하거나 어머니들에게 맡겨 버리고 자신은 골치아픈 입시에서 도피하려는 아버지가 대부분인 것이 요즘의세태이다.
대학시험을 앞둔 자녀들은 늘상 접촉하는 어머니의 말 백마디 보다도 아버지의 관심과 신뢰가 용기를 샘솟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세상의 아버지들은 알았으면 한다. 오늘 하오 5시면 전기대학 입시원서가 마감된다. 12월22일의 시험날까지는 꼭 24일이 남았다. 너무 때가 늦었다고 체념하지 말고 자녀들을 격려할 수 있는 방안을 나름대로 모색해 보라고 수험생들의 아버지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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