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변혁기에 있는 세계의 최근 상황에서 두가지 괄목할만한 현상이 유럽언론과 학자들의 조명을 받고 있다.첫째는 냉전과 체제대결 승리를 외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리라던 서방세계가 여전히 무기력과 갈등,혼란의 늪에 빠져있는 현상이다. 이 서방세계의 위기상황은 장기적 경제침체를 넘어 세계무역 및 외교안보협력체계의 알력,방향상실과 함께 선진국들의 사회적 갈등고조로 총체적 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는 공산체제를 타파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의 품안으로뛰어든 것으로 여겨졌던 구 공산권의 급진 시장경제개혁 후퇴와 보수 회귀현상이다. 구 공산권의 복고조짐은 탈공산 민주화의 선두주자였던 리투아니아의 구 공산세력 재집권으로 충격적으로 확인됐다.
이 두가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동서를 막론하고 경제적 진통에 따른 과도적 혼란에 불과한 것인가,아니면 이념대립적 구질서의 복귀조짐인가. 그도 아니면 모든 기존질서가 흔들리는 이른바 「세기적 혼돈」의 예고인가.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선 공산권 혁명의 본질부터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독일 출신의 석학 랄프 다렌도르프는 90년 「유럽혁명고찰」에서 공산권 국민들의 공산주의 폐기를 「반전될 수 없는 혁명」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이 혁명을 시장자본주의 선택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대결로만 보는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동구혁명을 칼포퍼의 개념을 빌려 『자유와 열린 사회를 향한 선택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이 「열린 사회」에서는 자유만이 절대적 가치일 뿐 나머지 모든 선택은 개방돼있고,또 개방돼야만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승리」나 「역사의 종말」을 외치는 것은 역사에 무지한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서방세계의 현 위기는 바로 지속적 복지대신 투기적 성장에 매달린 미국식 「카지노 자본주의」가 80년대 세계경제를 지배한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진단이다.
이같은 관점에서는 구 공산권의 보수화현상을 공산주의 가치에의 복귀가 아니라,분배정의 등을 외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의 결과다. 랄프 다렌도르프는 이미 90년 『혁명의 열기가 지나면 경제적 선택을 포함한 정상 정치의 모색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이 경제적 선택은 「열린 사회」에서 끝없이 천착돼야 할 숱한 가치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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