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 굳은 신념 “감명”이종찬의원 사무실엔 노산 이은상이 지든 「푸른 언덕」이라는 시가 걸려있다. 그 마지막 구절은 이렇다. 「가슴에 손얹고 비는 말씀이 겨레 잘살게 하옵소서」
이 후보를 만날때마다 나는 그 시구를 떠올린다. 특히 그가 대화중에 기도하듯 두손을 모으고 진지해 질때면 「겨레 잘 살게 하옵소서」하는 그의 염원을 읽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같이 두손을 모으게 된다. 그는 매우 사려깊은 사람이다. 여느 정치인처럼 떠들썩하거나 과장된 몸짓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를 처음 만났을때 내가 받은 느낌은 그의 동글동글한 용모만큼이나. 온화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생각이 깊고 말수가 적다. 남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하는 타입이다.
그는 난장판이 되다시피한 정치무대에서 본의아니게 손해를 보는 일이 있다면 짐작컨대 그의 그런 합리적인 성격탓일 것이다. 그는 내편 네편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싫어한다.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가 늘 자신의 정치적 입지보다 사안의 합리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세상이 다아는 얘기지만 그가 5공 초기 신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에 여당의 중진의원으로서 학원안정법의 입법에 반대한 일은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어느 좌석에서 반대하는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장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나는 그때 그 대답을 들으면서 「아하,이사람,벨벳 장갑속의 철권이라더니 바로 그런 사람이로구나」하고 느꼈다.
학원안정법을 원하는 사람,바로 전두환대통령이 누구였던가. 그야말로 철권정치의 장본인인데 감히 그에게 맞서다니,야당의원도 아니고 여당의원이면서….
그후에도 그가 의정단상에서 크로스보팅,자유투표를 주장한 일은 내게 작으나마 소중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합리성에 대한 굳은 신념을 확인케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온화하되 강하다. 그가 정치무대에 얼굴을 내민 이래 일관되게 새정치를 부르짖고 있음을 보면 나의 그런 생각은 과장이 아닌것 같다.
항간에서는 지난 5월이후의 그의 행보를 두고 결단력을 의심하는 주장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그의 합리성에 대한 깊은 사려에서 비롯되었으리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양자택일적인 결단보다 무엇이 바림직한 선택이냐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그는 고민을 많이 한다. 쉬운 길을 가기 보다는 꼭 가야만 할 길을 가고자 한다. 그 길이 쐐기풀로 우거진 길일지라도 바른 길이라면 그는 그 길을 고집할 사람이다.
그의 그런 정신은 아마도 가족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의 조부 이회영선생은 일제때 6형제,40여 식솔을 거느리고 만주로 건너가 항일무장 투쟁을 진두지휘했던 분이시다. 그중 단한분 이시영선생만이 생환하여 초대 부통령을 지내셨지만 그분 또한 이승만박사의 독재에 항거하여 부통령직을 사퇴하셨다.
불의에 저항하는 그런 정신이 이종찬후보의 혈관을 타고 맥동하기 때문에 그가 새정치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 같다. 그가 입후보의 변으로 「제2의 구국운동」을 제창한 것도 그의 가계로 보아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아무튼 이제 나는 표 찍을 곳이 생겨 마음 든든하다.<곽영훈 건축가>곽영훈>
◇이종찬후보 신상명세
▲출생=1936년 4월29일 중국 상해시에서 부친 이규학씨(작고)와 조계진씨(96)의 3남2녀중 3남으로 출생
▲가족=부인 윤장순여사(55)와 철우(31) 지원(29) 수진씨(24) 등 2남1녀
▲현주소=서울시 종로구 신교동 6의 22
▲학력=경기고 육사16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주요경력=국회의원 4선 민정당 사무총장 원내총무 정무장관 민자당 당무위원 서울대 동창회 부회장 한중문화협회·한영의원협회 회장
▲체위=신장 168㎝ 체중 68㎏ 혈액형 0형
▲종교=기독교
▲좌우명=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새롭길 원하거든 매일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라)
▲존경인물=백범 김구선생,벤 구리온 이스라엘 총리
▲애독서=「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새로운 현실」
▲저서=「개혁과 온건주의」 「자유여 민주주의여」 「무엇을 말했는가」 등
▲표방이념=지역감정 청산을 통한 대화합의 정치,세대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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