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라팽 아질」이라는 카바레가 있다. 위트릴로의 그림으로도 유명한 집이다. 지금은 흘러간 샹송들을 불러 관광객들도 꽉 차지만 한때는 젊은 피카소 등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단골 술집이었다.금세기 초엽의 한동안 이집은 프레디라는 애칭의 영감이 경영하고 있었다. 주인은 매일 새벽 「롤로」라 부르는 나귀를 몰고 파리 시내의 중앙시장에 나가 생선을 사서는 광주리를 나귀 등에 싣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라오곤 했다. 하루는 이곳을 자주 드나들던 작가 도르즐레스와 몇몇 화가가 장난을 궁리해냈다. 프레디 영감의 나귀를 몰래 끌어내다가 그 꼬리에 물감을 잔뜩 묻혀서는 캔버스 하나를 펼쳐놓고 거기에 꼬리를 마구 치게 했다. 멋대로 색칠이 되었다. 이들은 여기에 「아드리아해의 일몰」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는 이 「그림」을 까다로운 심사의 살롱전에 대항해 생긴 「앵데팡당」 전에 당당히 출품했다. 이 삽화는 지금도 「라팽 아질」에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파리의 「벨 에포크」(좋은 시절)을 말해주는 가화다.
그러면 이 「아드리아해의 일몰」이 그림인가.
2차대선 종결무렵부터 미국에서 일어난 액션 페인팅(행동 미술)의 대표작가 잭슨 플록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마룻바닥에 커다란 캔버스를 펼쳐놓고 줄줄 흐르는 물감을 떨어뜨리는 작업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미술에 있어서 미국의 유럽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이었다. 그 훨씬 이전인 「아드리아해의 일몰」은 이 액션 페인팅의 선구가 아니랄 것도 없다.
도르즐레스 일당으로서는 그것이 예술의 위장 연숩이었을는지 모른다. 나귀의 꼬리와는 전혀 엉뚱한 거리에 있는 표제를 빌려와 이미지를 포장함으로서 관람객을 희롱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관람객은 제목의 고정관념에 현혹당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것이 실없는 장난이었다기 보다는 예술의 경계에 대한 자문이었고 도전이었고 실험이었을 것이다.
산에서 커다란 바위를 하나 옮겨다 빌딩 앞의 높은 대좌위에 올려 놓았다 치자. 바위 자체는 자연이요 자연만으로는 예술이 아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대상을 포착하는 시각에 따라 사진예술이 되듯이 수석수집처럼 자연석을 고르는 눈이 예술이 될수도 있다. 게다가 대좌 아래에 가령 「조국」이라든지 하는 버젓한 제목을 붙이기라도 하면 행인의 눈에 하나의 추상조형물로 보일 것이다.
화가의 아틀리에 같이 널따란 유리창이 있다. 창밖의 경치가 그림같이 아름답다. 창틀이 꼭 액자 같다. 이럴때 창틀 밑에 화제를 하나 붙인다. 이럴때 창틀안의 경치는 그림인가 아닌가.
왜 이런 상상을 하느냐 하면 예술은 현대에 와서 변용이 무궁하여 그 정체성을 포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예술은 본시 논리적으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하므로 그 한계를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현대 생활에서는 의복이나 식기류 등 일상용품 하나까지 예술과 무관한 것이 없다. 넓은 의미에서는 예술 아닌 것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무변하다.
예술의 분계선이 이렇게 모호하다는 것을 기화로 오늘날 춤추는 것이 사이비 예술이요 위장 예술이다. 가짜가 진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처럼 예술의 탈을 쓴 사이비 예술은 진정한 예술에 기생하면서 그것을 잠식한다. 예술 종말론이 제기된지는 오래지만 예술은 사이비예술 때문에 고사할 날이 올는지 모른다. 예술의 자멸이다. 예술이 절멸한 세상에 살아남는 인간은 추하다.
글로 쓰여진 것이 모두 문학이 아니듯이 세상에는 아무리 너그러이 보아도 분명히 예술 아닌 것이 있고 아무리 예술이라도 유해·무용한 것이 있다. 예술이란 반드시 무엇인가에 유용한 용도이기 위해서 생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이라면 예술이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표현의 자유」는 예술의 특권이지만,예술의 이름으로 불미스러울 권리까지는 없다. 예술은 차마 볼 수 없는 것을 그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미에 구원을 찾다가 절망끝에 방탕하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타락한 예술의 예언서다. 예술의 파괴에 대한 경종이다.
문명의 발달과 사회의 진보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타락시켰고 예술가도 인간인 한 예외가 아니므로 예술가가 인격적으로 타락하는데서 예술이 퇴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술의 기초가 도덕적 인격에 있다는 것은 누누이 강조되어온 바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가장 더럽혀지지 않은 덕의 소유자』라는 쉘리의 「시의 변호」는 곧 예술의 변호다. 피카소가 『중요한 것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예술가의 인간이다』라고 말할때 그는 세잔의 그림에서 「불안」을 보고 있었고 고호의 그림에서 「고뇌」를 읽고 있었다.
예술과 비예술의 차이가 뭉개져 간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정신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럴때 위장예술을 경계해야 한다. 예술을 함부로 매명하는 일이 우리 주위에 없는가. 나귀의 꼬리가 그린 그림만큼도 순수성이 없는 예술은 위장예술이다. 예술가는 예술을 창조할 뿐아니라 예술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기도 하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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