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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후보없을땐 차선선택 용기를”/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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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후보없을땐 차선선택 용기를”/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초대석)

입력
1992.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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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통령되든 전정권 부정말아야/지도층의 준법으로 정치위기 극복을”/“한국의 민주발전만이 북한변화 앞당겨”▲대통령 선거가 한달 남았는데,대부분의 국민들은 냉소적으로 정치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분위기를 바꿀수 있겠습니까.

『국민들이 냉소적이고,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나는 다른 각도에서 보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선거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온나라가 흥분 상태였던 지난 대통령선거와 이번 선거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실로 오랜만에 내손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는 흥분이 있었으나,이번에는 좀 더 차분하게 이 후보 저 후보를 마음속에서 비교해 보는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를 감정적으로 치르던 자세가 이성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허무주의란 선거자체를 부정하고 희망을 잃은 상태라고 하겠는데,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80%를 넘지 않습니까.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은 지금 진지하게 누구에게 투표할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봅니다.』

▲이 후보도 저 후보도 마음에 안들어서 「가장 좋아하는 후보」를 고르기보다 「가장 덜 싫어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선이 없을 때는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매우 반민주적인 습성이 있는데,그것은 언제나 최상만을 바라보고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흑백논리로 가는 것입니다. 선거란 하느님을 뽑는 것이 아니고 후보들중에서 가장 나은 사람을 뽑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감정적으로 후보들을 보고 있습니다. 싫고 좋고가 문제가 아니라 이 시점에서 누가 더 나라의 장래를 위해 나은 인물이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어느 나라이든 이상적인 인물이 선거에 나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나와 있는 후보들중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한사람을 뽑아서 그사람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해 가겠다는 분위기를 국민 스스로 만들고,언론도 그렇게 유도해 나가야 합니다.

▲김복동의원의 민자당 탈당을 만류하는 일에 공권력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중립내각」이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총리가 어떤조치를 취하는게 좋겠습니까.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중립내각이라는게 뭔지 나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중립내각이 출범했으니 이제는 여야와 국민 모두가 중립내각이 성공하도록 힘을 합쳐야 할것입니다. 대통령이 처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것은 국민이 탓할 일이 아니나,김 의원을 데려오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무리가 있었다면 이는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총리가 이번 일에서 무슨 역할을 했겠습니까.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대선정국이 원만하게 가기를 원한다면 이번 일을 너무 확대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14대 총선이 끝나고 여덟달이 지나는 동안 국민들은 새로 뽑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한국정치가 지금 위기라고 보십니까.

『나는 국회의원으로도 잠깐 일했고,총리로서 행정부에 있으면서 국회에 불려 다니기도 했었는데,지금 우리의 정치는 권위주의 문화에서 민주주의 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국회는 아직 권위주의 문화를 청산하지 못했고,독선에 빠져 있는 면도 있습니다. 행정부를 무조건 죄인취급하고,이치에 맞지도 않는 큰소리로 국회의 권위를 세우려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국회는 국민생활의 기준인 법을 만드는 곳인만큼 국회의원들은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켜야 합니다. 지도층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서 한국정치의 혼란이 빚어지고 있으므로,지도층이 법을 잘 지키는데서 혼란극복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대통령 후보들도 모두 국회의원이거나 국회의원이었던 분들인데,한결같이 선거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있으니 어떻게 국민들이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총재님은 군인으로서 5·16 군사혁명에 반대했고,타의로 미국에 가서 정치학자가 되었고,6공의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한국근대사 속에 파란많은 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한국의 역대정권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역대정권이 단절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정부수립이후 역대 정권은 서로 연결되어 계속 발전해 왔기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이승만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전쟁을 치를 수 있었고,다시 민주당 정권은 민주주의에 불을 댕긴 공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민주당 정권이 실패한 것은 국민의 민주역량이 성숙하지 못했던 탓도 있습니다. 내가 5·16에 반대했던 것은 군사독재로는 공산독재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입니다. 북의 공산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대통령은 독재를 하는 한편 경제를 발전시켜 공산당과 싸울 수 있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심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의 냉전구도 속에서 미국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하지만,박정희대통령이 경제로 승부를 걸었던 판단은 옳았다고 봅니다. 5공은 박정희 정권이 이룩한 경제발전과 함께 독재와 부패를 물려 받았으나,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물가안정을 이룩했고,단임을 실천함으로써 민주발전을 한단계 높였습니다. 6공은 이를 기반으로 상당한 민주화를 이루었고,국제질서가 새로 개편되는 와중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헌정사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 탄생하는 정권은 으레 전정권을 부정하고,전정권과의 단절에 매달렸으나 이제는 그런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는 지금까지의 역사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교훈도 얻어야 하지만 그와함께 긍정적인 면을 이어가면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정신으로 우리가 선거에 임한다면 후보가 이러니 저러니 하고 공연히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총리시절 남북 총리회담을 치르셨는데 앞으로의 남북관계,특히 이산가족문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남북관계는 상대가 있으니 우리혼자만의 열의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늘 안타깝습니다. 북한의 사정이 매우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내일을 예측하기 힘들지만,한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정도를 밟아 나간다면 결국 북한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북한을 빨리 변화시키고 문을 열게 하려면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통해서 국민이 단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불완전하면 국민총화가 흔들리고,우리가 흔들리면 북한은 이중적인 대남정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조급한 이산가족들에게 너무 막연한 말을 하는 것같지만,남한의 민주발전만이 북한을 확실하게 변화시키고,통일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이인모 송환에 대한 적십자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적십자의 입장이라기보다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이인모문제와 이산가족문제를 연결시키는 것에 반대입니다. 우리가 인도적인 입장에서 재회를 추진하려는 이산가족과 이인모 노인을 똑같은 차원에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북이 이산가족문제와 이인모를 연계시키는 것은 억지이며,그들 북에 보낸다고 해도 북이 이산가족문제를 근본적으로 진전시키리라고 보지 않습니다. 북한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고는 이산가족문제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한국정치가 지나치게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이를 하루빨리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나는 지금이야말로 카리스마가 필요한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정치에는 지금까지 진정한 카리스마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낡은 가치를 버리고 새로운 가치로 가는 오늘의 전환기에 솔선수범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선각자가 나와야 합니다. 근본이 확립돼야 길이 생긴다(본립도생)는 말이 있는데,나라의 근본은 국민정신입니다. 침체에 빠진 국민정신을 새롭게 북돋으려면 진정한 카리스마,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먼제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다음 정부가 할일입니다』<대담 장명국 편집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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