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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인계과정서 미묘한 알력/미 정권이양에 얽힌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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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인계과정서 미묘한 알력/미 정권이양에 얽힌 뒷얘기

입력
199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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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장기화땐 국가적 위기도/취임후 수개월간이 “가장 위험”/케네디도 취임직후 쿠바침공 실수【뉴욕=김수종특파원】 지난 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이후 미국은 이상한 정치적 공백기가 계속되고 있다. 조지 부시는 헌법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지만 거의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명목상의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지키고 있다. 반면 빌 클린턴은 헌법상 아직 아무 권한도 없는 대통령 당선자에 불과하나 동성연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외국의 국가원수와 통화를 하면서 미국 정책을 설명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워싱턴은 함락된 수도같이 텅텅 비었다. 3주전만해도 그의 표정 하나하나가 주요 뉴스가 되었던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말 4일간이나 플로리다의 친구 집에서 우울한 휴가를 보냈으나 눈여겨 보는 뉴스미디어는 거의 없다. 그러나 클린턴이 살고 있는 아칸소주의 주도인 리틀록은 마치 미국의 수도를 방불케 하고 세계의 이목이 모두 클린턴 주지사 관저에 쏠려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뺏낀 자와 빼앗은 자의 주위는 이렇게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다.

2백여년동안 40번의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미국이지만 정권이양 기간은 정치적으로 아주 미묘한 기간이다. 특히 이번같이 현직 대통령이 도전자에 패배해서 정권을 넘겨줘야 하는 정당간의 권력이양의 경우 희망과 기회가 있는 반면 실기와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점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정권이양의 어려움은 대체로 내년 1월20일까지 백악관을 지키는 레임덕(lame duck)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경험없는 새 대통령이 취임이후 맞게되는 도전으로 구분되는데 이같은 정치적 위기는 때로는 국가적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가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는 18일 정권이양을 협의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회담했다. 부시 대통령이 초청하는 형식이지만 민주적 전통이 그래서 선례를 따르는 것이지 부시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만남이다.

이미 클린턴의 정권인수위원회의 버논 조던 위원장과 백악관의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이 정권인수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가는 대통령과 오는 대통령의 회담은 바로 백악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장 건설 망치소리와 함께 워싱턴을 정권이양 무드로 몰아갈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는 대통령과 오는 대통령 사이의 관계는 원만한 경우도 있었지만 미묘한 알력이 있었던 예도 적잖다. 두사람은 될 수 있으면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만남 자체도 공식적이고 차디찬 대화가 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대 워싱턴은 1797년 같은 연방주의자인 존애덤스에 흔쾌히 권력이양을 할 수 있었으나,1800년 선거에서 패배한 애덤스 대통령은 코머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하는데 비협조적이었다. 애덤스는 제퍼슨의 취임 전날 연방판사를 임명하는 등 자기의 헌법상 권한을 행사하고 이튿날 취임행사에도 불참했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자간의 교류가 없어 국가적 손해를 본 예는 1861년 민주당의 뷰캐넌 대통령과 공화당의 링컨 당선자간의 관계로 지적되고 있다. 당시 취임일은 3월4일로 선거일과 취임일간의 간격이 4개월에 이르렀는데 노예문제로 남부주가 독립을 기도하는 상황아래서도 두 사람은 한번도 만나지 않았고 링컨은 2개월만에 남북전쟁을 맞았다.

1909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후임자인 윌리엄 태프트 당선자는 같은 공화당이면서도 불편했다. 1928년 선거에서 쿨리지 대통령은 8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도 같은 공화당의 후버 후보가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위스키잔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릴 정도로 관계가 악화,후버도 대면을 꺼려서 당선후 남미여행을 떠나버렸다.

선거에서 패배한 대통령이 당선자와 만나는 전통은 1933년 공화당 후버 대통령이 승자인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나면서 부터이다. 물론 두 사람은 이념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협조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권이양이 실질적으로 잘된 경우는 40년전인 민주당의 트루먼 대통령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 가는 과정으로 보고있다. 서로가 원만한 관계였던 2차대전의 영웅인 아이젠하워와 트루먼은 52년 11월8일 백악관에서 만났다. 그러나 이들은 당이 달랐기 때문에 회담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트루먼은 회고록에서 아이젠하워가 자기 일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없었다고 술회한 반면,아이젠하워는 회담이 자신의 지식에 별 보탬이 되지 않았지만 정권이양 협조에 정말 감사했다고 회고록에 담았다.

트루먼­아이젠하워 간의 정권이양은 외교정책의 계속성이 미국 이익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증한 경우로 당시 한국전 휴전에서의 포로교환과 관련한 유엔총회 결의가 새 행정부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고 트루먼은 자기 정책을 고수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트루먼과의 회담에서 직접 지지를 공표하여 책임지기를 거부했다. 대신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하여금 『아이젠하워가 트루먼 정책의 원칙에 찬성하고 있다』고 밝히도록 함으로써 유엔결의를 촉진케 했고 트루먼은 몹시 만족을 표했다.

내년 1월20일 새정부가 들어선이후 수개월까지는 매우 위험한 시기로 분석되고 있다. 새 대통령의 주변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자칫 오만함이 바로 국정에 관한 무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외교정책에서 이같은 실수를 범하기 쉬운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번 같이 공화당 집권 12년으로 관료조직이 공화당 정책에 과도하게 익숙해진 상태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팀이 전혀 다른 정책을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적잖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정치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경험없는 새 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 실패한 본보기는 1961년 존F 케네디 대통령이 집권직후 쿠바 반란을 노리고 결정한 피그만 침공 사건이다. 케네디의 첫 외교시험대인 이 작전의 실패에 따라 젊음과 패기로 미국에 세대교체의 바람을 일으켰던 케네디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분석한 미국의 대통령 학자들은 케내디가 선거에 이기고 정권이양 과정이 모두 순조로웠기 때문에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보좌관들이 케네디가 하는 일은 실패가 없다는 일종의 「마이더스 신화」에 사로잡혔다고 지적한다.

내년 1월20일의 미국 권력이양기는 4년전 출범한 부시 정부의 권력인수 과정과는 방식과 상황이 완연히 다르다. 4년전 레이건은 부시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임기중 부시의 측근인 손 버그를 법무장관에,니콜라스 브래디를 재무장관에 임명하는 등 역사상 보기 드물게 부시를 위해 초석을 단단히 깔고 백악관을 내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는 현직 대통령을 패퇴시키고 워싱턴에 입성,12년 공화당 정부의 잔영을 지우는 작업을 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젊음과 패기를 과시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의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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