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총리 등 각료 3명 기소여부 “쟁점화”/담당관료 실형선고로 마무리짓자 여론 비등【파리=한기봉특파원】 지난 85년 프랑스 국립혈액센터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유통시킨 사건이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최대 정치위기로 확대했다.
프랑스 상원은 17일 로랑 파비우스 전 총리와 전직각료 등 3명을 「사법 고등법원」에 기소하기 위한 동의안을 심사한다.
이 동의안이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통과되면 현재 사회당 제1서기인 파비우스는 고등법원의 판결결과에 따라 실형을 선고받게 되며 사회당 정권은 회복 불가능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이즈 게이트」로 불리고 있는 이 충격적인 사건은 국립혈액센터가 지난 85년 5월부터 6개월간 보관중인 혈액이 에이즈균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유통시키거나 혈액제재로 시판,이를 수혈한 혈우병 환자 2백73명이 사망하고 1천2백50여명이 감염된 비극적 스캔들이다.
엄청난 사회적 파문속에 지난 6월부터 열린 공판결과,국립혈액센터 소장과 보사부의 고위관료 등 3명의 피고가 실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공판이 끝난후 국가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여론과 야당의 압력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미테랑 대통령은 지난 9일 당시 총리였던 파비우스와 사회문제장관,보사부차관 등 3명에 대한 사법적 처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헌법을 개정,각료에 대한 사법절차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헌법상 각료의 재임기간중 일어난 범죄사실은 각당의 의석비율에 따라 상하 양원의원 24명으로 구성되는 「사법고등법원」에 의해서만 심리된다.
사회당은 미테랑의 결정에 따라 오는 18일 의회에서 고등법원 재판관 임명을 더이상 거부하지 않기로 하고 5공화국이래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고등법원을 구성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야당이 다수의석인 상원은 이미 지난 12월 재판관 임명을 통과시켰다.
야당은 이에 따라 파비우스 등을 과실치시상 혐의와 직무유기 등으로 고등법원에 기소하는 동의안을 제출,17일부터 상원에서 심리가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공판결과 정부의 구조적 책임은 분명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어느 선까지가 사법적으로 유죄인가하는 점은 불분명한 채 남아있다.
국립혈액센터는 85년 5월 혈액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사실을 확인,이를 관계당국에 보고했으나 정부는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10월에서야 비로소 판금 및 수거조치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는 혈액의 폐기처분에 따른 막대한 예산피해와 당시 미국이 개발에 성공했던 혈액의 에이즈 바이러스 박멸방식(가열법)에 대한 의문이 한가지 이유가 됐다.
지난 7월 공판과정에서 증인도 소환되었던 파비우스는 「국가는 공범자」라는 비난속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주범으로서 4년 징역을 선고받은 미셸 가레타 국립혈액센터 전 소장은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수감됐다.
공판이 종료된 후에도 국가가 면죄부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높았다. 국민감정은 당시의 책임있는 정치인이 고의든 아니든 간에 국민을 「살인」한데 대한 정치윤리적,또는 사법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분위기였다.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소극적으로 대체해온 미테랑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미테랑의 최측근이며 사회당의 황태자로 불리는 파비우스가 기소되기까지는 상하 양원의 특별위원회 구성 및 동의안 표결 등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다.
사회당이 비록 고등법원의 구성에는 양보했지만 막상 기소를 위한 표결과정에서 반대나 기권을 하게되면 고등법원은 구성할 수 없다. 이미 이를 예상한 야당은 『국민감정을 일단 무마하기 위한 미테랑의 정치적 술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회당은 15일 긴급 소집한 간부회의에서 일단 의회 심의 및 표결 절차에서 당의 제1서기에 대한 지지와 신뢰를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여론과 야당의 공세를 외면할 수 없는 정치적 딜레마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당이 어떤 선택을 하든 에이즈 스캔들은 이미 여러분야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미테랑 정권에 엄청난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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