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중국분열 음모” 등소평입장 강경/언론공방 첨예화·시민여론도 양분 양상【홍콩=유동희특파원】 크리스 패튼 홍콩총독의 정치개혁안을 둘러싼 중국과 영국의 힘겨루기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홍콩의 중립계 명보는 13일 1면 머리기사에서 중국의 최고실권자 등소평이 홍콩문제에 관해서 영국측에 결코 양보하지 말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일국양제」 방식에 따라 홍콩반환 문제를 해결한 것을 자신의 최대업적으로 꼽고있는 등소평은 97년 이후 홍콩의 정치체제 문제를 놓고 영국측에 양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패튼의 정치개혁안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의회의 역할을 하게될 입법국의 직선의원 수를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60명의 입법국의원중 직선의원 수는 91년 선거에서 선출된 18명에 불과한데 95년 선거에서는 현재 정원 21명인 직능단체 의원의 선거방식을 간선방식에서 사실상의 주민직선의 형태로 바꾸어 직선의원의 비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패튼이 지난달 7일 홍콩총독 부임후 첫 시정연설에서 입법국의원 전원의 직선화를 지향하는 이같은 정치개혁안을 내 놓자 중국측은 이에 크게 반발했다.
중국측은 패튼의 개혁안이 지난 84년 중국과 영국간에 체결된 홍콩 반환협정과 이에 기초하여 마련된 97년이후 홍콩헌법 역할을 하게될 홍콩기본법의 정신에 어긋나며 보다 직접적으로 95년의 입법원 선거방식을 놓고 양국 외무장관이 맺은 비밀협약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패튼이 양국간의 비밀협약은 없다고 반박하자 중국측은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과 전기침 외교부장간에 오고간 외교문서를 공개하는 전례없는 일을 단행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양국 외무장관간에 오고간 전문은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영국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도,중국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도 있는 모호한 내용이다.
양측의 입장이 촌보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계속되자 홍콩사회마저 양분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홍콩의 입법국은 지난 11일 32대 21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패튼총독의 정치개혁안을 지지했다. 45명의 의원들이 발언에 나서 장장 7시간의 격렬한 토론을 벌인 끝에 나온 표결결과였다. 그러나 이보다 바로 이틀앞서 홍콩의 업계 및 전문직 종사자들의 모임인 홍콩의 공상전련은 패튼의 정치개혁안에 반대하는 입장표명과 함께 중국과의 협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홍콩의 언론도 사설을 통한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영자지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3일자 사설에서 입법국의원들이 97년이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중국의 은근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패튼의 정치개혁안을 지지했음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홍콩주민의 의사임을 중국측은 인식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계 언론의 반박논리도 만만치 않다. 대공보는 「식민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선물하고자 한다」라는 시리즈사설을 통해 식민통치를 끝내려는 마당에 민주제도의 구축에 열을 올리는 영국은 「민주」라는 이름아래 식민체제의 존손을 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난 홍콩시민들의 입장도 양국화 현상으로 치닫는 듯한 인상이다. 지난 5일의 여론조사에서 영국측이 양보해야 한다고 밝힌 사람이 8.8%,중국측이 양보해야 한다고 밝힌 사람은 10%였는데 닷새뒤인 10일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10.4%대 12.1%로 늘어났다. 양측이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비율은 같은 기간중 73.1%에서 66.9%로 줄어들었다.
중국이 패튼의 정치개혁안을 집요하게 걸고 넘어지는 배경에는 서방이 홍콩을 사실상 독립국화하여 97년 반환이후에도 영향력을 존속시키려 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회는 지난 9월 「92년 홍콩정책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내용중에는 97년 이후 홍콩이 충분히 자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 미국의 대통령은 무역 및 경제협정을 정지시킬 권한을 갖는다고 규정돼 있다.
「92년 홍콩정책법안」과 뒤이어 나온 패튼의 정치개혁안은 서방의 홍콩독립국화 의도를 나타내는 증거이며 나아가 소련이 해체된 이후 서시히 고개들기 시작한 중국분열을 위한 서방의 음모의 서막일지도 모른다고 중국측은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패튼의 정치개혁안에 대한 중국측의 거센 반발은 단지 홍콩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개혁개방이후 서방측에 번지고 있는 강력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신판 「황화론」을 겨냥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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