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상징”… 시행시기는 엇갈려/국민 “즉각”·민주 “93년내”로 일단 앞장선셈/민자선 현실경제 감안 「조건부실시론」 제시금융실명제는 각 정당이 대선 총선 등 선거때마다 내세우는 단골메뉴의 경제공약이다. 실명제가 경제정의실현 내지는 경제개혁의 상징이 돼버린 것 같다.
실명제실시에 있어 가장 적극적인 정당은 국민당이다. 국민당은 실명제의 「즉각 실시」 를 공약했다. 민주당은 「93년내 실시」 로 실시시기에 있어 다소 유동적인 입장이다. 반면 민자당은 실시시기를 구체적으로 못박지 않고 「조기실기」 라고 공약했다. 민자당은 경제성장 국제수지 물가 등 전반적인 경제사정이 안정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실시할 수 있다는 「조건부 실시론」 을 제시하며 그 시기를 94년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3당 모두 실명제 실시의 원칙에는 같은 생각이지만 실시시기에 있어 이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공약이 약속대로 실시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같은 자유경제체제 하에서의 실명제실시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체제를 새로 도입하는 것과 맞먹는 정도의 대개혁으로 평가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융실명제를 제도로서 인위적으로 실시한 나라는 아직 한 나라도 없다. 실명제가 정착된 서양의 경우 오랜 기간에 걸쳐 관행으로 실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 80년초 금융실명제(그린카드제)를 실시하려 했으나 부작용이 예상외로 크자 완전 백지화하고 말았다. 대만은 아예 실명제 실시를 꿈도꾸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두번의 실패경험을 갖고 있다.
경제를 신체에 비유한다면 실명제실시는 대수술이다. 수술도 보통수술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병세가 목숨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면 환자의 건강이 좋아질 때를 기다려 수술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환자의 병세 자체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된다면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도 수술을 강행해야 할 것이다. 민자당은 전자의 입장을,민주당과 국민당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수술준비는 다 되어 있다. 실명제실시를 위한 금융전산망 세무전산망 등의 하드웨어는 완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을 위한 개혁은 금물이다. 구소련의 경제개혁 경험은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시장경제도입 이라는 선거공약을 내세워 정치적으로 소기의 목적(당선)을 달성했지만 개혁정책 실시의 방법론에서 실패하여 많은 국민들의 민생경제 파탄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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