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호주의” 유럽의 시각/“경제공세 강화에 EC 통합 저해” 우려/독불 중심 「독자유럽」 창설계기 될수도【파리=한기봉특파원】 유럽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반응속에서 새로운 미국의 출현을 지켜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전부라고 할 만큼 클린턴의 미국은 유럽에 낯설게 다가오고 있다.
이같은 불확실성은 유럽의 통합과 관련한 현재의 미묘한 상황과 맞물려 더욱 크게 부각되는듯한 느낌이다. 유럽의 주요언론들이 선택한 「기대와 의문」 「도전과 기회」라는 헤드라인은 유럽의 심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클린턴 미 대통령 당선자가 유럽으로부터 열렬한 축하인사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례적인 환영 역시 비교적 냉랭하고 침착한 어조이다.
이는 우선 80년대의 개막과 함께 유지돼온 두대륙 집권당 지도자간의 오랜 이데올로기 동반관계와 친숙함이 한쪽 파트너의 교체로 균형이 무너진데 대한 심리적인 부담과 불안에 기인하고 있다.
레이건,부시 행정부와 함께 서방의 단합·냉전시대의 종식을 겪어온 유럽의 원로 정치지도자들은 전후세대의 40대 대통령 클린턴과 함께 과연 얼마나 조화롭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은 회의적이다.
유럽 언론에 등장한 클린턴은 해외순방 경험이 적고,외교협상 무대에 나선 적이 없으며 선거유세 기간에도 국제문제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은 「국내용 대통령」이다.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성명에서 부시의 업적을 칭송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빌 클린턴을 「윌리엄 클린턴」이라고 잘못 부를 만큼 클린턴은 유럽에 낯선 존재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클린턴의 서방의 긴밀한 협력전통을 무시한채 국내 문제를 다루듯 외교를 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클린턴의 등장이 유럽에 주는 의미는 무엇보다도 그가 국내문제에 치중할 경우 유럽에 끼칠 파급효과에 있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클린턴을 고립주의자,보후무역주의자로 정의하지는 않고 있지만 전임자에 비해 훨씬 이같은 성향이 강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선 유럽에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후퇴와 영향력 감소가 일반적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지역안보의 빚을 져온 유럽에서 클린턴의 공약처럼 앞으로 4년간 유럽주둔 미군이 10만명 이하로 감축되면 유럽의 안보구도는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유고분쟁에 대한 대응에서 나타났듯 유럽 자체의 안보질서는 아직 취약한 상황이다. 나토의 약화는 유럽내에서 새로운 힘의 경쟁과 불안을 초래할 것이므로 급속한 철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게 유럽 지도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게다가 일반적인 예상대로 클린턴이 국내문제에만 매달리는 경우 당장 러시아의 불안한 상황에 대한 유럽의 부담은 늘어날 것이다. 이는 유고분쟁과 함께 서유럽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클린턴은 당선후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것임을 강조했지만 유럽은 중동평화회담,러시아 지원문제,대중·대일 관계 등에서 미국이 자국의 입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클린턴의 등장은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유럽,강력한 유럽을 건설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측면에서 유럽에는 우려 못지않게 분명한 기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유럽통합을 주도하는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감소된 공백을 메우려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언론들은 『분명한 것은 미국이 더이상 유럽의 안보와 세계질서를 맡을 수 없으며 미국에 이를 부담지울 수도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클린턴의 미국은 유럽에 가장 큰 도전을 던지고 있다. 클린턴은 정치안보의 공백을 자국 경제보호를 위한 대유럽 경제공세에서 찾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을 둘러싼 양진영간의 극한 대립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럽은 부시 행정부의 무역보복조치가 기본적으로 클린턴과의 사전 합의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클린턴의 경제안보주의라고 지적되고 있다.
클린턴 당선이후 유럽은 두가지 위기를 맞게 됐다고 프랑스 르피가로지는 분석했다. 그것은 미국과 EC간 및 EC내부의 위기라는 것이다. 미국과 EC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긴장된 관계에 들어섰으며 미국의 공세앞에 EC는 크게 분열되고 있고 강경파인 프랑스는 내부로부터의 압력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의 보복선언은 바로 EC의 갈등에 화살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농산물 협상을 둘러싼 프랑스와 영국 등의 내부분열은 보다 긴밀한 EC 통합분위기에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분석가들은 여기에는 EC 통합을 달갑게 보지 않는 미국의 전략적 측면이 개재돼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정치적으로 볼때 미국의 선택은 유럽의 정치판도에도 도미노적 현상을 파급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80년대 미국 공화당 정권과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프랑스 사회당 및 영국 보수당 정권,독일의 콜 총리 등 주요 서방측에도 선거에 의한 새로운 변화의 선택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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