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혁명” 유럽언론들 충격/개혁실패·경제파탄에 국민감정 선회/“혼돈상태 CIS 행로에 중대한 영향”【베를린=강병태특파원】 구 공산당 세력이 압도적 승리로 재집권하게 된 지난 25일 리투아니아 총선결과에 대해 독일과 북부 및 동유럽 등 주변국 언론들은 상당한 충격을 나타냈다. 리투아니아의 「좌선회」는 혼돈상태에 있는 러시아 등의 향후 개혁행로를 가늠하는데도 중대한 시사를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가 구 소련공화국들의 탈공산 독립열풍을 선도할 당시 비상한 관심을 보였던 서방주요 언론들은 이번 총선결과를 대체로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공산세력 재집권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다른 발트공화국은 물론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 소련공화국들의 집권층은 체제의 탈공산화나 개혁의지에 관계없이 모두 과거 공산당 지도세력들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의 집권세력 사유디스(Sajudis)는 반체제 독립운동세력의 결집체다. 사유디스 의장인 최고회의 의장 란츠베르기스(60)도 공산당과 무관했던 음악교수 출신이다.
사유디스는 90년 소련 최초로 공산당 독재를 무너뜨리고 집권했고,역시 최초로 탈소 독립을 선언했었다. 이후 강경한 반소·반러시아 노선과 급진적인 자본주의 도입을 추구,서방 각국과 언론에 의해 소련체제 타파의 선도자로 부각됐다.
이같은 리투아니아의 선구적 탈공산혁명이 「반혁명」으로 반전된 주원인은 급진개혁 실패와 경제파탄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에 있다.
리투아니아는 금년초 전면 가격자유화후 2백%가 넘는 실질 물가상승률을 기록,국민들은 극심한 생활난을 겪고 있다. 이와함께 란츠베르기스의 강경한 반러시아 노선은 러시아의 가스 석유 등 에너지공급 전면 중단을 자초,경제와 일상생활이 마비됐다.
기업들의 구 소련 기업들과의 연계체제가 끊어져 경제회생 가능성도 봉쇄됐다. 공업생산이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에서 구 소련 시장은 거의 소멸됐고 서방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다.
이번 총선에서 46.6%의 지지를 받은 리투아니아 민주노동자당(LDDP)은 구 공산당 세력이지만 이들은 이미 89년 소련 공산당과 결별,독립과 개혁을 표방했었다.
이들은 당시 사유디스멤버를 경제담당 부총리로 영입하는 등 반체제 사유디스와의 공조를 시도했었다. 따라서 이들을 복고적 공산세력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반체제 지식인들이 중심인 사유디스에 비해 국가관리 경험이 있고,특히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배제하지 않아 경제위기 극복에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혁명적 반전의 보다 근본적 원인은 사유디스가 대표한 우익 민족주의의 왜곡된 탈소·탈러시아 열기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에 있다고 지적된다.
민족주의 세력과 서방은 2차대전 전의 리투아니아가 서유럽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전통을 가진 주권국가였으며,소련의 강제병합으로 이 전통이 단절됐다고 강조했었다. 완전독립은 당위이며,자본주의 도입여건도 가장 유리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분히 소련 공산체제의 알력과 붕괴 필연성을 강조하기 위한 왜곡이 개재돼 있다. 리투아니아는 18세기 이전부터 사실상 러시아 지배하에 있었고,역사상 자생력을 상실하고 소멸한 여러 소국중의 하나다. 리투아니아가 명목상 주권국으로 잠시 재생한 것은 2차대전중 나치의 괴뢰국으로서였다.
리투아니아의 사회주의 기반은 러시아혁명 이전부터 뿌리깊다. 레닌이 한때 이곳을 거점으로 삼을 정도로 우익 부르주아지배층에 대한 노동자 농민 등 사회주의 세력의 도전은 강력했었다.
독립과 자본주의에 대한 열망이 팽배한 상황에서도 란츠베르기스 등 사유디스 지도층이 과거 부르주아계층이 대표들임을 지적하는 우려는 사유디스조직 저변에도 있었다. 란츠베르기스는 이 우려대로 급진적인 자본주의 도입과 반대세력에 대한 극단적인 대결정책으로 계층간 대립을 조장했다. 또 극단적인 우익 민족주의 노선을 고수,소련·러시아와의 타협을 거부해 결국 경제파탄을 촉진했다.
란츠베르기스는 선거참패후 러시아의 공작을 비난했으나,실제 그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좇는 국민의 다수인 노동자 농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사유디스는 18.4% 지지획득에 그쳤고,우익 동맹세력 기독교 민주당도 11%에 머물렀다. 반면 좌익은 LDDP의 46.6%와 사회민주당의 5% 지지를 합쳐 과반수 지지를 넘어섰다.
소련의 탈공산혁명을 선도했던 리투아니아의 불과 2년만의 이같은 좌선회 「혁명」은 단순히 위기상황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맹목적 환상의 파기에 따른 결과로 이행해야 할 측면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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