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등 「넓은지평」 불구 불확실성 여전/국지분쟁·미국병 치유능력 예상 엇갈려【뉴욕=김수종특파원】 미국인들은 세대교체를 의도하고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뽑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빌 클린턴앨 고어 팀의 워싱턴 입성은 지난 60년 젊은 존 F 케네디의 출현에 견줄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었다.
올해 46세의 클린턴은 전후세대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됐다. 미국에서는 이를 두고 베이비붐(Babyboom)세대 대통령의 출현으로 시대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미국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이 세대는 문자 그대로 2차대전에 참전했던 미국인들이 전쟁이 끝나고 귀국하면서 미국 가임여성의 출산율이 평소보다 4배 이상 높았던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46년부터 60년까지 태어난 이들은 현재 30대 초반에서 46세에 이르렀다.
미국의 인구 자연증가율을 폭발적으로 높여 놓은 베이비붐 세대는 60∼70년대를 거치면서 전례없는 사회사조를 만들었다. 60년대 후반 성년이 되기 시작한 이들은 월남전 징병기피와 반전운동,마리화나와 록음악에의 심취,히피문화로 이어지는 미국의 반항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진보적 사고경향은 이번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였던 환경보호와 낙태자유(Prochice) 지지로 잘 나타났다.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고 미국 시장 구매력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클린턴고어는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이다. 전쟁을 거역할 수 없는 국가의 부름으로 생각하고 해군조종사로 출격했다가 격추됐던 부시와 월남전 징병을 기피하고 진보주의자이자 반전파 상원의원 조지 맥거번의 대통령 선거운동원으로 뛰었던 클린턴은 극명히 서로 다른 세대를 대표한다. 88년 선거때까지만 해도 지도자의 결격 사유나 마찬가지였던 여자 스캔들,징병기피,진실성 등이 이번 선거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바로 히피세대인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맞을 정치 사회적 배경은 그의 민주당 선임자가 처했던 상황을 배합해 놓은 것 같다. 병든 미국 경제를 타개해 달라는 국민적 욕구를 안고 있는 점에서는 60년전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비슷하고 새로운 세대의 기수로 등장했다는 점에서는 30년 전 존 F 케네디와 유사하다. 또 부패한 기성 워싱턴 정치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책무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16년전 이름없는 조지아주지사에서 일약 세계 최대의 권좌에 올랐던 지미 카너와 비교할 수 있다.
클린턴 자신은 선거기간에 케네디를 자주 인용하고 그가 창조했던 변화의 이미지를 자신에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케네디가 텔레비전 토론시대를 연 대통령인 것처럼 클린턴은 토크쇼와 MTV 및 퍼스컴 문화가 만들어 놓은 대통령이다.
이같은 문화적 배경의 차이만큼 클린턴은 케네디와 다른 역사적 조류를 타고 있다. 케네디가 집권할 당시는 베를린 봉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동서냉전이 가열되기 시작한 반면 클린턴이 집권한 지금 냉전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냉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부시가 그 승리의 굴레속에 갇혀 클린턴에 굴욕적으로 패배한 것은 이율배반적인 시대배경이다.
클린턴은 탈냉전이후 당선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린턴은 그의 우상인 케네디보다 훨씬 넓은 지평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케네디가 안아야 했던 냉전의 벽도,루스벨트가 직면해야 했던 살인적인 대공황도,카터가 골머리를 않았던 인질문제도 없다. 부시가 불평했던 의회와의 교착상태도 없어진다.
그러나 세계는 전면 핵 전쟁의 위협이 사라졌을뿐 여전히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 국지분쟁의 지뢰밭이 널려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 소련권과 유고의 불안정,사담 후세인의 도전 및 중동문제,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중국의 변화가 어느날 클린턴에 도전해올지 모른다. 그의 통상정책은 세계를 무역전쟁의 회오리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그보다 클린턴에게 급한 문제는 병든 미국 경제 치료 등 국내 문제이다. 클린턴은 그의 세대가 성장하는 동안에 생겨난 미국 병을 처방해야 한다. 전통적인 미국 가정은 무서운 속도로 파괴되어가 있으며 흉악범죄와 마약,도시빈민 문제 등이 극에 달해있다. 특히 실업문제 해결은 집권 2년내에 획기적인 개선이 없을 경우 94년의 엄한 중간선거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클린턴의 능력에 대한 예상은 엇갈리고 있다. 변화를 위해 그를 뽑은 사람들도 그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신뢰성의 문제,대외정책에 대한 경험부족이 주로 지적되고 있다. 인구 2백50만의 아칸소주지사의 경력으로 자칫하면 카터의 전철을 밟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높다.
그러나 탁월한 설득력과 타협정신,예선전에서 보여줬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는 끈기 등으로 단시일내에 권력을 요리해 나갈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랜만에 권력을 잡은 진보세력인 그에게는 그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움직이는 언론이 상당히 우군이 되어줄 공산이 크다.
댄 퀘일 부통령이 3일 밤 패배를 시인하는 연설에서 『클린턴이 선거운동을 잘하듯 나라를 잘 다스리면 걱정은 없다』고 한 말이 클린턴의 장래를 잘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의 지도력을 테스트받는 클린턴고어세대의 불확실성에로의 행로가 이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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