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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2.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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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발생한 앨거 히스 스파이사건은 2차대전의 연합국이었던 미소가 종전후 국제정치의 주도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던 냉전의 초기였던 만큼 미국조야를 크게 뒤흔들었다. 사건의 발단은 전향한 소련 첩자 위태거 챔버스가 하원 비미활동조사위 청문회서 미 국무부 관료였던 히스가 외교 비밀문서를 빼돌렸다고 폭로한 것이었다. ◆엘리트 관료의 국가비밀 누설에 여론이 들끓었으나 조국의 배신자로 몰린 히스가 혐의사실을 극구 부인함으로써 반신반의의 동정론도 만만치 않았다. 챔버스가 폭로한 히스의 국가기밀 누설행위는 10년전의 일로 시효가 이미 소멸되었지만 히스는 위증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3년반의 옥고를 치렀다. ◆히스사건을 계기로 각계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매카시즘이 50년대의 미국을 광풍처럼 휩쓸었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뜻하지 않게 곤욕을 겪어야 했다. 하원 비미활동조사위서 히스사건을 파헤친 공화당 소장의원 리처드 닉슨은 일약 정치인으로서의 명성을 쌓고 상원의원,부통령을 거쳐 권력의 최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히스사건은 구 소련체제 몰락이후 모스크바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구 소련측 정보자료에 의해 반전되었다. 러시아 군사정보 보관소장인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장군은 지난달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국 변호사 존 로웬탈에게 히스사건을 폭로한 챔버스가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근거를 찾지 못하였으며 히스가 44년간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이 분명하다고 밝힌 것이다. ◆인생의 절정기에 어느날 갑자기 반역자로 몰렸던 히스는 볼코고노프의 증언이 공개되자 80대 노인의 모습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나 억울한 누명이 생전에 벗겨진 것만도 다행스럽다고 떨리는 목소리고 울먹였다고 한다. 히스의 간첩행위를 폭로했던 챔버스가 1961년 죽고 말이 없어 진상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운이 나빴던 한 노인의 구겨진 삶만이 한 시대를 뒤흔들었던 국가기밀 누설사건의 잔해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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