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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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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작달막하고 빨간머리에 몸매가 다부졌다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보다 한세기 먼저 태어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증명하고 옹호하다가 당시의 기성권위에 도전했다는 혐의로 1633년 로마에서 종교재판을 받고 파문당했다. 그로부터 3백59년만에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지난주 갈릴레오를 공식 복권했다. 이로써 교회와 과학간의 「비극적 이해부족」은 오랜 방황끝에 종지부를 찍었다. ◆네덜란드 안경업자들이 1608년 처음으로 쌍안경을 만들자 갈릴레오는 다음해에 그것을 개량한 망원경을 만들어 목성주위를 도는 위성 4개를 발견했다. 베니스 주재 영국대사였던 헨리 워턴경은 이 사실을 본국 정부에 긴급 보고하기까지 했다. 갈릴레오는 지속적 천체관측끝에 지동설을 확신하게 됐다. 교황청은 그의 행위를 교회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몇차례 경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친분이 있었던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1623년 우르바노 8세 교황으로 즉위하자 다음해에 여섯차례나 새교황을 알현하고 도리어 지동설을 용인해 달라고 간청했다. 어림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그는 1633년 4월12일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라틴어로 피고를 3인칭으로 부르던 그 당시 재판형식으로 심판관들은 물었다. 「그는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 「그는 그같은 의견을 갖지말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는가?」 ◆그해 6월22일 고문위협도 갖춘 비밀심판에서 결국 그는 굴복했다. 「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무릎을 꿇고 교황의 가르치심을 믿으며 앞으로도 믿을 것을 맹세합니다…」­ 자택에 연금된 가운데 74세에 눈이 멀자 그는 탄식했다. 「천체를,우주를 널리보던 내가 이젠 앞을 못보는구나…」 그것은 당시 과학의 실명이기도 했다. ◆그가 태어나던 해에 셰익스피어가 태어났고 그가 세상을 떠나던 해엔 뉴턴이 태어났다. 훗날 뉴턴은 갈릴레오가 초보적으로 다듬던 중력과 운동의 법칙을 체게화했다. 인간,진리를 찾고 다듬는 일은 줄지어 계속됐고 이제 그는 복권됐다. 교황청의 용기,진리의 복권에서 갈릴레오 과학의 실명도 이젠 끝났다고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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