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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주체사상 환상에서 깨어났다”/「중부지역당」 황인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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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주체사상 환상에서 깨어났다”/「중부지역당」 황인욱씨

입력
1992.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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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제출 “화제”/편력·전향 적나라하게 기술/“북은 해체 필연성 내포” 결론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형 황인오씨(36·중부지역당 책임비서)와 함께 구속된 인욱씨(25·중부지역당 편집국장·서울대 서양사학과 석사과정)가 지난달 29일 기소된이후 검찰과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법조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주사파 지식인의 편력과 전향의 행로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 글에서 황씨는 16절지 28장 분량을 통해 운동권 참여과정,친북성향을 갖게된 이유,형의 지하당사업을 돕는 동안의 번민과 북한의 주체사상 및 운동권에 대한 전망 등을 서술했다.

고 박종철군과 서울대 인문대 동기인 황씨는 『삶의 세속적 의미를 무시해버리고 현실과 고통스럽게 대립해 살고 있는 이시대 청년지식인중 한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정의한뒤 『이제는 주사파로 활동하면서 가졌던 환상에서 깨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반성문에 의하면 황씨는 대학에 들어간뒤 우리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발견,「지식인은 민중의 희생으로 얻어진 기득권을 민중에 대한 봉사로 돌려줘야 한다」는 사르트르의 명제를 받아들여 「민중속으로 들어가자」는 결론을 내리고 3학년때인 86년 서울대 구국학생연맹에 가입했다.

이어 그해 10월 황씨는 북한 찬양 대자보를 내다붙인 빨갱이로 낙인 찍혔으며 87년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소식을 접하고 분노하게 됐다.

대전 교도소 등에서 복역하면서 황씨는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원천인 분단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판단,북한에 사상적 친밀감을 느끼게 됐으며 골수 주사파로 변해갔다.

황씨는 『90년 9월 형이 지하당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형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필연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형의 무전연락과 지령수신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황씨는 지하당 사업에 자주성이 없는 것을 알고 회의에 빠지게 된다.

안기부로 압송되는 차안에서 자신을 반성하기 시작했다는 황씨는 『안기부에서의 20일간은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기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연방제 통일을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믿고 활동했지만 형과 연계되고부터는 북한에 이로운 통일을 추구한 것 밖에는 되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황씨는 『나의 주체적 신념은 초라한 환상이었고 자주적 애국사업은 북한의 지령에 따른 반국가적 간첩행위에 다름 아니었다는 비참한 결론은 수사관들의 판단에 앞서 스스로의 자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황씨는 북한 체제의 문제점으로 정치적 부자유와 경제적 낙후성을 지적하고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제한하는 북한은 해체될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황씨는 『북한 사회의 생존을 위해서는 주체사상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 용도폐기됐듯이 주체사상 역시 특정한 역사의 산물이므로 결코 절대적인 이념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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