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세대인 46세의 빌 클린턴이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지도자로 등장했다. 당선직후 제일성으로 클린턴이 말한 「미국에 있어 하나의 새로운 시작」인 변화의 파고가 거세게 일 것 같다. 미국민들은 지금 클린턴이 「비틀거리는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기를 바라는 희망찬 기대에 차있을만도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한미관계에 큰 변화가 없으리라고 자위적인 기대를 하면서도 불안한 구석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통상마찰 문제와 주한미군 정책이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아무려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때처럼 한미관계가 미묘해지기까지야 하겠는가. 77∼81년 1월까지 미국을 이끌었던 카터는 선거공약인 주한미군 철수를 재임 절반을 넘길 때까지 미련스럽게 고집 우리를 불안케했고 박동선사건과 인권외교로 그가 불러일으켰던 양국간의 우여곡절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카터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동부의 핵심 지도계층에서는 『할렘가에까지 찾아가 선거공약을 하고 대통령이 된 자』라는 비웃음의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실현도 못할 공약을 흑인들에까지 남발한 카터는 미국 정치인들의 불문율을 어겼다는 비꼼이었다는 것이다.
워터 게이트 망령에 시달리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도덕정치」를 들고 나와 백악관의 주인이 됐지만,그것은 「미국제일」을 기조로 하는 패권주의 미국에서 실현할 수 없는 공약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어서 카터 리더십의 본질적인 허구만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카터는 무능한 대통령으로 단임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미국 정치학자들의 평가다.
공약남발과 그 불이행이 리더십의 권위 붕괴와 통치불신을 초래해 지도력 부재의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야 했던 대통령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행정학자인 김용서교수(이화여대)는 그의 저서 「한국형 보수주의와 리더십」 속에서 『노태우대통령은 후보시절에 선거용 선심공약을 남발,리더십의 기초적인 요건을 불비한 측면을 보였었다. 유세기간에 공약을 남발하고 다니면서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의 재원을 필요로 하는지,그 재원조달이 거의 불가능한 우리 경제현실을 파악함도 없이,다시 말해서 지도자로서 예견력이나 통찰력없이 공약을 남발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리더십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한다. 김 교수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 남발과 「보통사람의 시대」 개념의 혼미,중간평가 불이행 등이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자승자박하는 무거운 짐이 되어 그의 통치과정 전반을 위축시켜 갔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 교수의 진단과 평가가 어느 정도 정확한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유보하고 싶다. 그러나 12월 대선을 향해 뛰고 있는 민자·민주·국민당의 3당 대통령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남발하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들을 보면서 하나같이 지도자로서의 목표설정 능력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고,김 교수의 진단처럼 공약남발이 그들이 리더십을 경정적으로 훼손하게 된다면 7공 정권 또한 6공과 같은 가치혼란이 초래하는 「착각의 논리」가 성행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한나라의 최고지도자는 국민들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 그 기대감은 국민들의 실생활에서 가시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제공할 수 없는 기대를 국민들로 하여금 과잉기대하게 한다든가,그도 어찌할 수없는 어려움에 대하여까지 과잉의존토록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국민적 기대감을 고취시키면서도 국민적인 욕구불만과 좌절감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는 것이 훌륭한 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을 3당의 후보들이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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