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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와 사회개혁/한상진칼럼(밖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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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와 사회개혁/한상진칼럼(밖에서 본 한국)

입력
199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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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대로 미 대통령선거는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는 전국의 고른 지지로 압도적 다수의 선거인단을 획득,부시 현 대통령을 완패시켰다. 민주당으로서는 12년만에 통쾌한 승리로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셈이다. 특히 40대 젊은 리더십의 등장이 인상적이다. 세계는 미국을 이끌어갈 젊은 리더십에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민주당은 이제 국민대중의 강력한 지지아래 레이건­부시 행정부의 보수주의를 청산,개혁의 기치를 높이 쳐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상유지 대신 변화를 택한 미 유권자의 강력한 집합의지가 미국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여성,흑인,노동자,자유주의자,소수인종에 못지않게 중산층,젊은세대,노인,도시거주자 등 다양한 집단이 민주당을 지지,변화를 갈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분명 정권교체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정권교체가 없는 민주제도는 설사 형식적 절차에 하자가 없다하더라도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깨끗한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병든 몸과 같은 것이다. 일반국민의 관점에서 볼때 지금까지 으스대며 권세를 누리던 집단이 물러가고 개혁적 신진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통괘하고 시원스럽다. 이것만으로도 주권재민의 민주주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계기로 하여 의미있는 정치·경제·사회개혁을 이룩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미국은 과연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이 개혁에 성공한 다른 나라들로부터 우리가 얻는 교훈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우선 분명한 점은 미국 민주당 정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문제가 단적인 예이다. 재정적자 무역적자 저축률 감소 투자하락은 미국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구조적 취약점이다. 일본의 추월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집단의 복지요구와 경제성장의 조화는 지난 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불신과 저항을 받고 있는 제도정치의 개혁도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포스트 냉전시대를 이끌어갈 민주당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무엇인지도 아직 분명치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이자 개혁의 핵심과제는 아마도 사회적 분열의 치유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한 예로 미 연방은행과 국세청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미국 총재산 가운데 상위 1%인 83만가구의 몫은 1983년 31%였으나 89년 37%로 크게 증가한 반면,다음 9%의 몫은 35%에서 31%로,나머지 90%의 몫은 33%에서 32%로 줄었다. 이것은 1920년대 이래 최대의 불평등 심화를 뜻한다. 즉 연 백만달러 이상의 고소득 가구는 많이 늘었으나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하류층의 빈곤,특히 도심지역의 흑인문제는 훨씬 더 악화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금년봄 LA 인종폭동이 터졌던 것이다.

따라서 클린턴 후보가 이번 선거를 『분열과 일치 사이의 싸움』으로 규정한 것은 수사학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레이건­부시 행정부가 사회적 분열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는 경제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분열된 국민의 마음을 어느 중심으로 모아 사회적 협력과 화합을 얻어내야만 비로소 그 힘에 의해 경제문제의 해결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정권교체로 의미있는 사회개혁을 이룩하는데는 세가지 조건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첫째는 변화를 요구하는 다양한 집단 가운데서도 특히 소외된 대중을 명실상부하게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권력주체로 부상하는 것이다. 이 경우 70년대초 남미 칠레의 경험처럼 양극화의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리더십이 잘 형성되면 소외대중은 정치적 신뢰와 미래에 대한 기대로 현재의 어려움을 감내할 여유를 갖게 된다. 최소한의 개혁으로 이들이 사회적 합의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로 정권교체가 실현될수록 사회개혁의 입지는 커진다. 그만큼 개혁정치의 사회적 기반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셋째,가장 중요한 점은 집권에 성공한 야당이 정책대안의 급진적 유혹을 떠나 온건화되는 것이다. 기득권층과 정면 대결하기 보다는 자유시장 정책을 대폭 수용,그들의 창조적 변신을 유도하고 공익을 위한 그들의 협조·자제·역할을 증진시키는 유연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다.

여러 대륙의 전환기 경험 가운데 유독 스페인과 아르헨티나가 정권교체와 사회개혁에서 성공적인 이유는 이런 과정을 통해 급진세력이 온건화되면서 폭넓은 개혁지향적 세력연합이 형성되고 정치적 합의가 넓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온건개혁 노선으로 기득권층과 소외 대중을 접목시키는 탁월한 리더십의 가능성은 이치와 경험으로 볼때 여당 보다는 야당에 크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진로도 이점에서 상당히 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위치에 처해있는 것일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여전히 본심을 숨긴채 눈치를 보며 상황에 따라 모호한 이중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각자가 어떤 원칙에 의해 입장을 정리하도록 정보소통과 분위기를 이끌어갈 것인가. 중대한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점은 우리 사회에 검증되지 않는 편견·통념·금기·고정관념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그 부작용을 넘어서려면 길은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공명정대한 토론과 언술문화로 정치적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TV토론의 중요성은 여기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정책비교는 물론 후보자의 경륜,신뢰성,일관성,도덕성에 대한 검증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현실에서 어떤 정치적 선택이 국민적 합의와 협력으로 사회적 균열을 치유하고 21세기 미래를 개척하는데 보다 바람직스러운지에 대해 원칙있는 분명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직한 논의,투명한 논의,합리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어쩌면 언론부터 새로운 정치문화 창달에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아닐까.<서울대 교수·미 뉴욕 콜롬비아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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