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다. 나라와 안팎이 그렇다. 스테이터스 쿠오(현상 고착)가 허용되지 않는다. 변혁을 하지 않고서는 국제경제의 전방위 경쟁시대에 살아남지 못한다. 냉전체제가 자본주의·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남에 따라 경제전은 오히려 강도가 높아지게 됐다. 시장의 개방화·국제화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경제는 점점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 경쟁력이 취약해지면 뒷마당은 커녕 안방에서도 지게돼있다. 한국으로서는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사회적으로도 생산적인 변혁이 절실하다.한마디로 총체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갈 재벌기업들의 탈바꿈이다. 재벌그룹들은 경제의 압축성장에 따라 비약적으로 성장,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공할 존재로 부상했다. 돈·조직·인력을 갖고 있는 재벌그룹은 상위 5대그룹의 경우 개개그룹이 잘못되는 경우 국가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삼성·현대 등 상위 2개그룹의 외형거래액은 거의 나라예산에 버금가는 규모다. 상호이해의 상충이 걸림돌이 돼서 그렇치 상위 5대그룹이 결속한다면 한국에서는 극복치 못할 장애물이 없을 것 같다. 여기에 여신관리 대상인 30대 재벌그룹들의 힘을 생각하면 그 위력은 엄청난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이 원하고 정부가 의도하는 재벌그룹의 탈바꿈은 이 막강한 힘을 가진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재벌의 무서운 저력은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전 회장의 정치인으로의 변신성공에서 극명하게 반영됐다 하겠다. 재벌의 직접적인 정치권력화는 고금동서간에 정 전 현대그룹 회장이 첫 사례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국민당 대통령후보로서 두번째의 정치시험대에 오른다. 사실상 이번 대통령선거가 진정한 정치시험이 될지 모른다. 정주영 국민당 대표는 아직은 시험되지 않은 정치인,그의 정치적 공과는 앞으로 평가되겠지마는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변신 그 자체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를 남긴 것이 된다.
파문을 일으켰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대통령선거 출마미수도 이 선례에서 영향받은 것이라 하겠다. 재벌그룹들의 만족할줄 모르는 확장에 따라 그들의 힘도 증폭되고 위상도 격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나 정부가 원하는 재벌의 탈바꿈은 재벌의 정치화가 아니라 재벌의 세계기업화·민주화다. 상위 5위 재벌그룹들이면 국내에서는 무소불위의 공룡이지마는 세계적 기업들에 비하면 도롱뇽에 불과하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살아 남으려면 서둘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 비교우위가 있는 업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력 집중완화의 주표적의 하나는 바로 재벌그룹의 수평적 확산(문어발식 확장)을 수직적 계열화(업종전문화)로 유도,주요업종에서 세계적 기업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상호지급보증의 제한,상호 출자의 금지 등 재벌그룹이 문어발식 확장에 애용해온 금융조달 수단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여신관리대상 30대 재벌그룹 계열회사들의 상호지급보증 한도를 제1(은행),2금융권을 포함,내년 4월부터 시작해서 3년이내 자본금의 2백%로 축소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30대 재벌 계열회사들의 상호지급보증은 은행 상대가 자기자본의 3백65%인 1백15조,제2금융권이 자기자본의 1백74%인 54조로 모두 합쳐 자기자본의 5백40%인 1백69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계의 창구인 전경련은 민자·민주·국민 등 3당을 상대로 강력한 반대로비를 펴고 있다. 문제는 민자당의 향배다. 이번 국회에서 그 법안이 보류·폐기되는 경우 정부는 재벌그룹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해 다시는 제동을 걸기가 어렵게 된다. 민자당의 개혁의지 여부가 시험되는 좋은 기회다.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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