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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권력/송태권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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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권력/송태권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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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이 한 사건의 사회·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척도로 삼는 것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우연인가,필연인가」하는 점이다. 최근 김우중 출마소동은 이같은 필연과 우연의 논쟁거리가 될만하다.정주영씨에 이어 김우중씨,하나도 아니고 두재벌 총수가 동시대에 나란히 정치야심을 내보인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있을까. 수십년간 외길을 걸었던 이들의 정치야망을 부추긴 시대상황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개선 조짐이 없는 혼탁한 정치현실,캄캄한 경제 전도,오락가락하는 정책 등등. 여기에 재벌과 정치권력간의 위상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수십년전을 답보하고 있는 후진적 구조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재벌총수들은 분명 이 점에 깊은 유감을 갖고 있다. 권력의 보호로 성장한 재벌총수들은 이제 권력과의 주종관계에서 벗어나 정부·정치권과 대등한 게임을 벌이고 싶어한다. 덩치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재벌의 리더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그것을 어렵게 하는 정치현실과 사회구조에 불만을 품고 때로는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

관리나 정치인에게 무조건 절절매야 하는 비정상적인 기업­권력관계는 재벌총수들의 눈에 틀림없이 개혁의 대상이며,가진 것 없이도 큰 소리 떵떵 칠 수 있는 정치권력은 한편으론 정말 매력적인 「직업」일 것이다.

정주영씨가 정계 진출후 재벌총수들에게 한 일성이 『할 얘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제일 좋다』며 정치해보라고 권유한 사실이나 김우중회장이 오래전 『세끼밥 똑같이 먹고 항상 굽신대야 하는데 뭐좋을게 있느냐』고 토로한 것은 재벌총수들 누구나가 갖고 있는 정치권력에 대한 서러움을 웅변하고 있다.

총수들은 음지에서 억눌리며 키운 힘을 이제 양지에서 「현실화」해보고 싶은 욕망에 싸여있다. 또한 해외로의 기업성장이 한계에 처하면서 고여가는 기업내부의 힘을 발산할 곳을 찾고 있다.

결국 정주영·김우중씨는 모든 재벌총수가 마음에 그리고,그들 아니면 누군가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영화의 한 배역」을 맡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의 정치바람을 시대상황이 빚어낸 필연의 소산물로 보지 않으면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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