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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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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2.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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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종말론을 겁없이 퍼뜨린 다미선교회 목사가 구속되었을 때,잠시 신앙의 자유가 거론되다 말았다. 가당치 않았기 때문이다. 핑크색 저작으로 대학교수가 구속되자,이번엔 표현의 자유가 논쟁을 일으킨다. 목사와 교수의 구속엔 아무 연관성도 없고 어떻다 비교할바도 안된다. 다만 한가지 놓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에 대한 의문이다. ◆휴거의 날짜를 딱 못박은 시한부 종말론은 개인과 가정,교회와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간 것으로 혹세무민임이 실증되었다. 허구를 믿고 일어선 다미선교회를 스스로 해체한 것은 당연할 따름이다. 후유증이 거의 없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나 할까. 애초부터 정상의 종교와는 거리가 먼 맹신의 분류였다. 신앙의 자유는 문제화할 여지조차 없었다. ◆이와달리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갈린다. 외설이다,아니다,문학예술이다 라고­. 그 중간쯤이 저질이라는 판단이다. 이러한 평가가 저자인 교수가 구속되자 표현의 자유로까지 비화된 것이 아닐까. 덜컥 구속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요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엇갈리는 의견과 판단마다 일장일단이 있을 것 같다. 신앙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나 그 한계를 긋기가 쉽지 않다. ◆어디까지가 신앙과 표현의 자유이고 속박인가는,수학의 송식과 같은 잣대가 없으며 또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유의 한계라는 말부터가 이상하고 구속감을 안겨준다. 그렇다고 무제한이라면 방임과 방종과 다를게 없으니 참으로 애매한 노릇이다. 여기서 필요한게 상식을 바탕으로 한 견제가 아닐까. ◆휴거소동이 가라앉자 한국교회의 자정력 부족이 아쉽다는 주장이 잇달아 나왔다. 교수의 구속과 표현의 자유도 문학계 스스로가 자정능력이 왕성했다면 그 양상이 훨씬 달라졌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사회전반에 걸쳐 자정의 의지와 능력이 모자람을 통감하게 된다. 그래서 혼란이 꼬리를 물고 생기지 않나 하는 의문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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