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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서 본 미 대선/정일화 워싱턴특파원 현장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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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서 본 미 대선/정일화 워싱턴특파원 현장리포트

입력
1992.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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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반전」 세대의 대결/월남전싸고 시각차 뚜렷/국방·경제정책 등도 대립지난 1년간을 숨차게 달려온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이 3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차기대통령을 뽑는 차원을 넘어 21세기의 미국을 어떤 조류로 몰아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치열했던 선거현장을 함께 뛰며 취재해온 정일화 워싱턴특파원의 현장칼럼을 통해 미 대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편집자주>

백악관은 벌써 두달째 텅비어 있다. 지난 9월7일 노동절을 기점으로 뒤처진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 전국 유세길에 나선 조지 부시 대통령은 워싱턴을 일주일에 한번 들를까 말까 할 정도로 멀리 떠나 있어 백악관은 마치 빈집같은 분위기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앞은 평소 경계의 눈을 번득이며 버티고 서있던 보초도 보이지 않고 국화꽃만 화사하게 피어있다.

백악관은 조용한 토요일밤이 되면 에이브러햄 링컨의 영상이 2층 복도를 절벅거리며 오르내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루크지(Look)는 쓴 적이 있다. 정말 요즘은 링컨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대신 백악관을 바깥쪽,백악관의 새주인을 뽑는 선거표밭은 시끄럽다 못해 귀가 찢어질 지경이다. 클린턴은 몇번이나 목이 쉬었고,쇠소리처럼 날카롭게 울리는 부시 목소리도 지쳐있다. 부시는 생과 사의 승패가 걸려있는 중서부주들,미시간·오하이오·일리노이·위스콘신·테네시에서 『그의 동료들이 전장에 죽어가고 있는동안 반전데모를 한 이 사람을 대통령에 뽑아도 되겠느냐』고 외쳐대면서 목청이 갈라지는 듯한 힘겨움을 보인다.

격렬했던 지난 1년,짧게는 지난 2개월간의 긴장된 선거기간을 돌아보면 이번 선거는 결국 세대간의 대결,구체적으로는 전쟁세대와 반전세대의 대결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서로간에 이견도 많았고 불신의 벽도 높았다.

클린턴(46)은 『나는 월남전을 반대했다. 그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무리 국가가 결정하고 국가가 치르는 것일지라도 생명을 끝없이 삼켜가는 그런 전쟁에 나가라는 명령같은 것은 거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 세대이다.

마리화나 피우는 풍조가 사회저변을 흐르고 있을 때 그는 그것을 친구들과 함께 피워보기도 했다. 「우리」(WE)보다는 「나」(I)를 먼저 생각하는 「I세대」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철저한 계획과 실천을 중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아칸소주 리틀록에 있는 「클린턴·고어 선거운동본부」의 전국적인 민주당 선거운동 조직을 움직이는 선거본부장,부본부장,각 부처부장,차장 이런 인물들은 대부분이 30대 후반이고 기껏해야 40대 초반이다. 이들은 거미줄같이 얽힌 컴퓨터 정보망을 키보드 하나로 움직이면서 예리한 머리를 움직여가고 있었다. 부시가 무슨 말을 하면 즉각 관련자료와 이를 반박할 채널을 찾아 반격에 나서도록 한다.

클린턴이 부시(68)와의 TV토론에서 『당신 아버지가 매카시즘을 반대한 것은 옳았지만 당신이 내 애국심을 의심하는 것은 틀렸다』라며 아버지뻘도 넘는 현직 대통령을 그의 아버지까지 거명해가며 물고 늘어질 때 전쟁세대들은 아연실색했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해온 모든 정책,국방 외교 경제 보건위생 교육 가정휴가 등 모든 분야에서 모조리 이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하면서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르고 또 어떻게 보면 크게 다를 것 같지도 않은 교묘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부시와 같은 전쟁세대,그 사상에 동조하는 그룹들에게는 이같은 반전세대의 떠오름이 몹시 위험해 보인다. 부시는 10월31일 막판 유세에서 『클린턴 대통령이라니,무섭다』라고까지 말했다.

아버지가 막강한 상원의원이었으면서도 19세의 어린나이로 사지인 전쟁터에 뛰어들었고 「위대한 미국」의 기치아래 25년을 공직에 바쳐온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월남전때 징병을 기피하면서 해외에서 반전운동을 했고,미국의 정책을 모조리 비판하고 부인하는 이런 베이비붐 세대가 미국 대통령이 돼서는 큰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클린턴은 대외관계에서도 철저한 「I세대」식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미국이 일본상품을 받아들이는 그 만큼,일본도 미국상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유럽이 이제 부자가 됐는데 왜 미국이 그곳에 계속 주둔해야 하는가라는 등 철저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입장에 서 있다. 부자는 돈을 많이 벌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낙수(trickle down)」 경제적 사고를 버리고 세금을 더 내 직접적인 공헌을 하라고 요구한다.

부시 지지세력은 대단히 공고하지만 40%선을 넘지 못한다. 대신 클린턴 지지는 그의 노력한 선거전략 덕택에 다양한 세대,다양한 인종,다양한 계층을 붙잡아 한때는 60%선의 지지를 얻었었다.

프랑스의 정치가겸 정치사학자였던 알렉시스 토크 빌은 프랑스 혁명후인 1831년 미국을 방문한뒤 쓴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미국의 힘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제도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프랑스도 이런 자유 평등의 선거제로 가야 한다고 썼었다.

반전세대와 전쟁세대간에 도저히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지도자 자질론,경제정책론,국방정책론도 지난 2백년간 성공적으로 지켜온 위대한 선거민주주의에 의해 조절되고 유지되는 광경은 확실히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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