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회고록」 베스트셀러 1위/실상고발·여행안내서 등 꾸준히 팔려/「국교정상화 회담」 계기 관심고조 반영【동경=문창재특파원】 불황의 일본 출판계에 북한관련 서적이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90년 9월 일본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김환신)의 돌연한 북한방문과,뒤이은 국교정상화 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점증하다가 최근 김일성 북한주석의 자서전 출간으로 급격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웅산각이란 출판사가 최근 펴낸 김 주석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의 일역판 「김일성회고록」은 지난주 동경의 대표적인 서점 야에스 북센터 등 두곳에서 베스트셀러 1위로 부상했다.
또 10월초 1주일 동안은 교토(경도)의 한 서점에서도 1위였다. 북한 노동당 출판사가 지난 4월 출판한 이 자서전 1·2권은 권당 2천5백엔(한화 1만5천원),2천8백엔이나 하는 비싼 책.
본격적인 신문광고가 나기 전부터 날개돋친듯 팔린 것은 조총련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북한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김일성이란 흥미있는 독재자로 쏠린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아직 서평이 소개된 일은 없지만 독자들은 『이 책에서 김일성 우상화의 극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아버지 김형직을 위대한 민족운동가 독립운동가로 날조한데 비판이 집중된다.
이 자서전이 나오기 전에 출파된 북한관련 서적들도 꽤 팔렸다. 국내 월간지에 실렸던 글을 번역한 「북조선,그 충격의 실상」은 지난해 7월 출간이후 지금까지 8만권정도가 팔렸는데 이것이 북한 서적붐의 계기가 됐다. 출판사(강담사)측도 의아해 할 정도로 꾸준히 팔려나가자 다른 출판사들도 앞다투어 북한물을 내놓았다.
「북조선 Q&A100」이란 종합가이드 책자도 얼마되지 않아 7천부가 팔렸다. 이 책의 출판사측도 『문답식 책으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각사가 경쟁적으로 북한물을 내놓고 있어 상승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증 북조선」 「내가 본 김왕조」 「김일성조서」 「배반당한 악사」 등 최근 1년반사이에 쏟아져 나온 북한관련 출판물은 20종이 넘는다. 대부분이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고 체제의 위기를 점친 부정적 시각의 출판물이다.
북한책이 팔린다니까 84년에 출판됐던 「동토공화국」도 다시 나왔고,북한의 제한된 관광개방과 때맞추어 「북조선관광」이란 여행안내 책자도 나왔다.
출판계 인사들에 의하면 이같은 현상은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일었던 한국관련서적 붐과 비교될 정도라고 한다. 북한전문가가 많지 않아 출판사측이 『뭐 좋은 거리가 없나』하고 저자를 찾아나서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타스 통신 평양특파원 출신인 알렉산더 제빈의 「내가 본 김왕조」를 일역판으로 서둘러 출판한 것도 이같은 현상을 입증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구서적은 별 관심을 끌지못한다. 김일성 저작집을 시리즈로 간행해온 출판사는 『주체사상을 테마로한 총서류 이외에는 다른 계획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른바 「북한 두들기기」류 이외에는 팔리지 않는 현상을 대변하는 말이다.
일련의 두들기기류 가운데는 북한의 변화상을 소개한 책도 끼여있어 순수한 관심을 끈다. 「내가 본 김왕조」가 그것이다. 78년부터 1년간,83년부터 90년까지 두차례 타스 통신 특파원으로 7년3개월동안 평양에 체류했던 제빈 기자는 갖가지 제약과 위협까지 당했던 경험을 소상히 밝힌뒤 80년대말부터 일어난 변화상을 소개했다.
그 첫번째로 80년대말부터 「한식 추석 단오 등 민족의 3대 명절」이 부활된 것을 들었다. 전에는 그런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나 87년 한식날 각 외국공관에 근무하던 현지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고,그후 한식 추석마다 성묘객들이 트럭을 타고 성묘가는 장면들을 목격했다는 것.
두번째는 91년초 외국인 기술자들이 체류하는 호텔방에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의 사진이 철거된 것. 세번째는 구 소련의 유명한 록가수의 평양공연으로 비롯된 경음악과 외국영화의 유행이라 했다.
북한의 실상을 너무 비참하게 묘사한 것들은 많은 재일동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이런 변화를 객관적으로 전해주는 책이 큰 위안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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