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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극/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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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극/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2.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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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오버암머가우촌에서 10년마다 주민들이 공연하고 있는 「예수 수난극」은 우리나라 각종 문화축제에 또다른 하나의 반성을 일깨워준다.우리나라의 시민문화는 대개 「관객의 문화」지 「참여의 문화」가 아니다. 시민들은 객석에만 앉아 있고 무대에 오르지 않는다. 무대에 서는 것은 선수들이다. 선수들의 문화만 가지고 진정한 축제가 되기 어렵다. 축제가 되자면 운동회 같아야한다. 운동회에서는 누구나 아마추어 선수일 수 있듯이 무대에서도 누구나 아마추어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해준 것이 오버암머가우의 마을사람들이다.

여러 예술형식중에서도 가장 민중적인 것이 연극이다. 모든 사람은 드라마를 좋아한다. 별다른 소양 없이도 아무나 접근할 수 있다. TV 연속극이 인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배우의 소질을 가졌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내부에 극성을 지니고 있다. 이 극성이 언제든지 배우가 될 수 있는 소지다. 가장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문배우만이 배우인 것 같지만 그들은 훈련되었을 뿐이고 그것이 직업일 뿐이다.

광복직후부터 한동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소인극운동이 활발했다. 각 지방에서는 주민들끼리 모여 무대를 꾸몄고 학교마다 학생극이 열을 올렸다. 직업극단이 활성화되기 전이요 TV도 없던 때라 드라마에 허기진 시민들은 스스로 배우가 되었다. 차츰 직업극단이 늘어나고 방송이 라디오 드라마로,이어 TV 연속극으로 시청자를 빨아들임으로써 소인극은 소멸되어 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 소인극의 부활이다.

연극은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공동체의 동질성을 체험하게 한다. 관극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관객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모든 관객은 공동운명체의 일원이라는 유대감을 갖게 만든다. 이 연극이 마을 주민끼리의 소인극일 때 그 체험은 한층 더하다. 이웃사람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무대에 나올 때 공속의식은 피가 끓는다. 이것이 자꾸만 도시화되어가는 오늘의 우리 지역사회를 살리는 길이고 또한 바로 소인극의 가장 큰 효험이다.

연극은 집단이 등장하므로 참여의 폭을 넓히기에 알맞다. 게다가 어느 연극이나 관객은 무대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특히 소인극은 자신이 출연하지 않더라도 관극하는 것 자체가 참여다. 그 성취감은 등장한 아마추어 배우에 절대로 못지않다. 연극이란 본시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화시키는 재미로 보는 것이지만 소인극에서는 같은 주민인 등장배우와 자신을 동일화시킴으로써 스스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이 때 관극의 체험은 곧 배우의 체험이다. 자신속에 잠재한 배우의 소질이 용틀임을 한다.

소인극은 이렇게 해서 문화예술을 시장에 나와있는 일용품 정도로 친근하게 느끼게 만든다. 문화가 특수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기른다. 문화가 먼데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케한다. 문화의 체득이다. 문화에 손쉽게 접근하는 길은 스스로 문화적 체험을 갖는 것이다. 연극은 안다는 것은 모든 예술을 아는 것이다.

페테르부르그(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표트르대제는 러시아를 서구화하는 정책으로 18세기초 독일의 쿤스트극단을 초빙해 순회공연을 시키는 한편 연극학교를 개설했다. 연극이 유럽문화를 집약적으로 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누이동생인 나탈리아 알렉세이예브나는 사설극장을 세워 소인극단을 발흥시켰다. 러시아 최초의 극작가인 수마로코프는 이 소인극을 보고 충격을 받아 러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을 창설하게 된다. 그의 평생에 걸친 연극활동은 그 원점이 소인극의 무대였다. 오늘의 러시아연극은 소인극의 모태다.

표트르대제는 또한 학생극을 장려한 황제이기도 하다. 신학교와 의학교에서 학생극을 공연하게 했다.

성인들의 소인극과 함께 우리가 되살려야 할 것이 학생극이다.

학생극은 특히 같이 노는 놀이가 없어져 가는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연대감을 길러주는데 특효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그 밖에 풍부한 감성과 표현력을 키우면서 창조적 인간으로 육성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훈련으로 정보사회에 적응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예술에 대한 흥미를 얇은 감수성속에 집어 넣는다. 학생극도 성인의 소인극과 마찬가지로 구경하는 것 자체가 능동적인 예술활동이다. 학생극으로 길든 어린이들이 자라면 나중에 성인 소인극의 주역이 되게 마련이다.

성인 소인극은 지역단위 뿐 아니라 직장단위 또한 장려되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자칫 삐꺽이기 쉬운 각 기업에서 직장극은 윤활유가 된다. 직장극에 대한 경영자측의 지원은 어떤 투자보다 회사분위기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다.

지역단위나 직장단위나 소인극은 얼마전까지 공연장의 미비가 큰 저해요인이었다. 지금은 시군마다 각종 회관이 있고 높은 빌딩마다 큰 강당이 있다. 이 공간들은 비어있을 때가 더 많다. 소인극이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해마다 학생극 경연대회가 열리고 직장극 경연대회가 열리고 시군대항 소인극 경영대회가 열릴 때 학교마다 회사마다 마을마다 활력이 넘치고 나라의 문화수준은 객석에서 무대에 올라선 것처럼 한격단 높아질 것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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