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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의 허점/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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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의 허점/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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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닉슨 대통령은 국무부를 제쳐놓고 소위 비밀외교 측근외교를 즐겼다.자신 만큼이나 비밀과 관료체제를 싫어했던 최측근인 헨리 키신저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내세워 대중공 수교,월맹과 협상,인도­파키스탄 전쟁중재,중동분규 조정 등을 비밀외교로 추진했다.

이를두고 외교계 원로인 조지 볼 전 국무차관은 『대통령이 국무부와 직업외교관을 소외시키고 중요문제를 다루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도박이요 모험』이라고 비난했다.

주무부서를 따돌리고 측근에게 의존하는 「비밀외교」 「측근외교」는 비밀을 유지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한채 「극적타결」을 이룰 수 있는 효율성이 있다. 하지만 몇몇인사와만 중요사안을 협의·결정함으로써 오판·실리를 자초할 우려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6공이래 한국외교는 외무부가 하는지 청와대가 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그치지 않고 있다. 결코 달가운 지적이라고 할 수 없다.

6공 정권이 공산권이 붕괴되는 대변혁시대를 맞아 북방외교에 역점을 둔 것은 평가할만하다. 문제는 북방외교를 추진하는 방법에 있었다. 당연히 외무부가 중심이 되어야 했음에도 배제되거나 심부름과 뒤치닥거리역 수준에서 어설픈 비밀외교­측근외교를 구사한 것이다.

동구권중 처음으로 시도했던 대헝가리 교섭에 엉뚱하게 당시 청와대 실력자였던 박모씨가 밀사로 가서 수교에 합의한뒤 귀국후 사진까지 곁들여 비밀외교 내용을 크게 광보했고 이어 소련에 잠행,그쪽 요인들과 교섭한 경위가 언론에 보도되어 비밀행각의 주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의심케 했다.

소련과 관계개선의 핵심이 됐던 30억달러 차관공여의 경우도 국민들은 결정전에 관련부처의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또 구 소연방의 붕괴·해체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장담아래 외교관례를 깨고 기획원장관이 아닌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소련 부총리와 차관공여 협정에 사인한 것 역시 「해괴한 일」이지만 외국서 빌려다준 거액의 현금과 물품을 상당량 건네준뒤 오늘날 이자는 물론 원리금 회수의 전망마저 어두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중국과 수교과정도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다. 북경정권과의 국교수립이 오늘의 국제정세로 볼때 대세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문제는 언제 어떤 절차와 조건으로 하는가에 있었다. 꼭 전격적으로 서둘러 했어야만 했는가. 중국이 지난 8월에 하자고 했을 때 우리는 적어도 2∼3개월 늦추자고 하면서 수교에 따른 분야별 손익을 장단기로 다시 정밀 검토하는 한편 오랜 구우인 자유중국에도 이를 떳떳이 알려 충격을 최소화시키면서 새로운 경제·문화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와함께 대중국 수교협상에서는 적어도 중공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 사과를 요구,어떤 형태로든 문서화했어야 했다.

이번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 발표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단 하루의 실무방문이라해도 국가원수가 해외 출장을 갈 때는 확고한 명분과 목적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의 김종휘 외교안보담당 수석비서관은 『현안 타결이라기 보다 이웃국가로서 다소 소원해진 관계를 복원하고 미 대통령선거 결과 등 관련 정세변화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지만 국민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 정도의 논의라면 현지 대사 등 외교채널이나 외무장관 회담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번 방일 결정이 외무부가 소외되고 또 효과면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편 가운데 청와대 고위 보좌관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어쨌든 시기적으로나 명분에 있어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외교는 전문 부처인 외무부가 전담케 해야 한다. 우리의 외교는 과거 직원 20∼30명에 이승만대통령이 외교관의 출장비까지 결재하던 빈약했던 구멍가게의 형편이 아니다. 우리 외교는 세계 1백79개국중 1백65개국과 수교했고 1백37개 상주공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외무부 직원만도 1천7백여명이나되는 가히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부족한 점이 아직도 많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어떤 난교섭과 숙제를 맡겨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럼에도 외무부가 중요 결정과 교섭에 번번이 소외된채 측근 외교·비밀외교가 이뤄지고 또 측근들이 중요사안을 좌우한다는 것은 외교의 발전과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에는 스타도 수재도 필요없다. 외교는 또 당장의 이익보다 유장하게 흐르는 장강대하와 같은 자세로 중지를 모아 하나하나 벽돌 쌓듯 추진되어야 한다.

외교는 외무부에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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