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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의 중국방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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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의 중국방문(사설)

입력
199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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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왕의 중국방문은 한반도를 사이에 둔 두 거인들이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황속에서 주고 받는 첫 의례적 행사로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한반도를 건너뛴 이 「주고받기」는 그만큼 우리에게도 커다란 관심거리다.23일부터 엿새동안 아키히토 일본왕은 양상곤주석을 비롯해서 강택민총서기,이붕수상 등 중국의 최고위 지도자들과 만나고,어쩌면 등소평과도 만날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중국과 일본의 수교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지만,동북아의 주변상황으로 봐서 고도의 정치적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구조가 빛을 잃으면서 그동안 동북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대한민국이 소련·중국과 국교관계를 텄고 일본과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트는 협상을 시작했다. 또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은 동북아의 냉전해체에 아직 본질적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새로운 상황임에 틀림없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일본은 지금 강대국으로서의 「복권」을 노리고 있다. 당면한 외교적 목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하는 것이요,동아시아지역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이다.

그 1차적 포석은 지난해 9월부터 10월에 걸친 아키히토왕의 동남아 순방이었고,캄보디아에 유엔평화군의 이름으로 군대를 보낸 것이었다. 미국도 일본이 유엔 안보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역할을 확대하는데 찬성하고 있고,태평양 연안을 지키는 군사강국화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강대국으로서 복권하려면 이웃 거인이요,과거 침략자로서 짓밟았던 중국의 정치적·의례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계산했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으로서도 일본왕의 방문에 상당히 신중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 강택민총서기는 일본왕이 「과거사」를 사과하고 안하고는 일본측에 달린 일이라고 못박았고,서민들의 반일 움직임을 강력하게 막고 있다는 보도였다.

이제 「시장경제」로 깃발을 바꾼 중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경제협력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민감할 것이다.

결국 일본왕의 중국방문은 두나라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탈냉전시대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강국들이 초강대국의 그늘을 벗어나 보다 독자적인 외교의 영역을 넓혀가는 다원화시대의 상징적 사건이다.

흔히 일본과 중국의 관계를 「경쟁적 공존관계」라고 이르고 있다. 우리로서도 새로운 시대의 다원화된 외교판도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상태에 있다.

아키히토 일본왕의 중국방문이 어떤 역사적 발자취를 남길 것인지 심각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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