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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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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워진 2백만 동포의 어제와 오늘(중국 조선족:9)

입력
1992.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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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춘/「제2홍콩」 개발 붐… 잘살기 “부푼꿈”/개방바람에 “취직쉽고 고임금” 기대/타지 동포까지 건설현장 참여 봇물/한·중 수교후 “탈북한” 가속… 왕래도 교역도 줄어연길에서 동북쪽으로 30여분 차를 달리면 두만강과 도문시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두만강을 끼고 북녘땅을 바라보면서 30분쯤 달리면 혼춘시가 눈에 들어온다. 도문­혼춘간 도로는 93년초 개통을 위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멀리 오지인 절강 안휘성 등에서 온 한족 노무자들이 가을햇살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하고 있다. 안내원은 『이 도로뿐만 아니라 백두산 정상에 이르는 포장도로도 조선족은 힘든 일을 싫어해 한족이 건설했다』고 설명했다.

한때 춥고 황폐해 버려졌던 오지,김대건이 북경에 갔다가 한국 최초의 신부로 거쳐온 곳이기도 한 소도시 혼춘이 막 잠에서 깨어나 영롱한 2천년대의 동해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혼춘은 「제2의 홍콩」을 꿈꾸며 세계의 기업가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국제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는 혼춘시내에서는 각종 건설공사가 한창이며 북한과의 합작인 모란봉 식당과 한국과의 합작기업인 혼춘 쌍방울 보온메리야스 공장도 있다.

89년 시로 승격된 혼춘은 91년 3월 유엔개발계획(UNDP)의 개발사업으로 두만강 개발계획이 공식선정된데 이어 92년 3월 국무원(정부) 비준으로 변경개방도시가 됨으로써 행운의 파랑새가 됐다. 그뒤 9월말까지 12가지 정책권한과 막대한 자금이 부어졌고 중국 국내외 기업가들과 학자들이 속속 현지를 답사하고 있다.

혼춘 개발구판공실의 김철부주임은 『5년 동안 방대한 기초시설 건설에 40억원이 투입될 것』이라고 말한다. 시외상(외국기업) 투자봉사센트의 컴퓨터에는 실적을 알리는 숫자가 눈부시다. 「92년 7월17일까지 3천2백개 투자상담조 접대. 삼자기업 70개,투입액 5억4천만원,비준된 항목 75개,투입액 1억5천만원…」

혼춘시 당위와 인민정부는 9·3민속절 기간에 한국 등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혼춘시 개방개발 소식발표회」를 갖고 일반 외국인 출입금지구역인 방천 등을 관광유람 시키기로 했다. 혼춘은 확실히 끓고 있다. 외국기업들의 투자로 직장잡기가 쉬워지고 임금도 몇백원으로 높아진다는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한족이나 조선족이 몰려들고 있다. 혼춘시 신안가의 한 개체 여인숙에는 흑룡강성 목능현에서 온 고급·중급 공정사직함을 가진 조선족 기술자 4명이 합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목능현 농업국부국장인 이갑식씨는 『혼춘은 바다를 마주하고 다국경선에 위치해 있어 심천보다 더 획기적으로 발전하리라 봅니다. 그래서 혼춘 시민이 되길 자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인구는 18만명이나 조선족은 해마다 줄어 91년말 현재 47%에 불과하다. 훈춘일보 박동천사장(52)은 『한족 유입에 따른 역전현상이다. 조선족은 더 낫고 편한 직장을 찾아 계속 빠져나가고 한족이 화력발전소나 석탄 금광산 등에 몰려들고 있다』고 말한다.

유엔은 두만강 하구 자유무역구 건설에 향후 20년간 3백60억달러를 투입,홍콩과 같은 국제무역항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UNDP는 북한의 나진,중국의 혼춘,러시아의 포시에트를 연결하는 소삼 각 지역과 북한의 청진,중국의 연길,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대삼각 지대로 나눠 공동개발하는 방안을 제인하고 있다. 도문­혼춘간 철로는 물론 혼춘과 러시아의 크라스키노간 매일 2천대의 트럭유통을 확보할 수 있는 2급 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이 도로는 94년에 러시아의 대항구인 포시에트까지 이어지게 된다.

92년 8월엔 러시아의 크라스키노와 혼춘간 65㎞ 철도 연결공사에 합의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변경무역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혼춘 장영자의 통상관 공터엔 갓 수입된 러시아제 승용차 5백여대가 진열돼 있었다. 통상관의 직원은 『중국은 주로 의류 등 일반 소비제품을 내다팔고 러시아로부터 자동차와 비료 등을 들여온다. 교통이 편리해 교역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곧 흑룡강성의 흑하나 수분하지역을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장영자가 혼춘의 대외개방의 첫 신호라면 혼춘에서 1시간30분 거리인 방천은 그 귀결점이다. 방천은 아직도 외국인에게 전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중국인들도 방천관광을 하려면 혼춘여행사를 이용해야 한다.

개가 짖으면 중국 북한 러시아 등 3국에서 들을 수 있다는 변경지역인 방천은 동해로 나가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러시아 국경선 너머엔 동해를 배경으로 러시아의 핫산과 북한의 두만강구를 잇는 철도가 눈에 들어온다.

일부 관광객들은 부둣가로 나가 뱃놀이를 즐긴다. 대형유람선이 5척,소형보트가 2척인데 구명복을 입은 장사꾼들이 『10원만 내면 된다』며 호객을 한다.

방천보다 사타자는 북녘 땅에 훨씬 가깝다. 사타자는 본래 만족어로 모래언덕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중조친선의 다리」 밑으로 두만강 물이 흘렀으나 상류물길이 돌려져 지금은 초지로 변해있다. 국경검문소 관리인은 『문혁때 두절됐다가 등소평 복권후 다시 개통되었다』고 설명한다.

혼춘에 이르는 두만강 물은 누렇게 오염돼 있다. 위쪽 북한의 무산철광과 중국쪽 도문시 석현 제지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그대로 방류되기 때문이다. 남자 1명 여인네 3명이 북한으로 가기위해 검문소 안에 앉아 있다.

왕청현에서 왔다는 한 여인은 『북한에 옷 등 공업제품을 가져가 건어물 등을 가져옵네다. 물건을 팔면 5백원정도 남지요』라고 말한다. 연변자치주에서 북한으로의 통로구실을 해온 혼춘도 예전처럼 왕래가 활발하지는 않다. 혼춘 출입국관리소의 한 직원은 『국경의 다리를 통해 하루 몇명이나 왕래하느냐』는 물음에 『보시는 바와 같이』라며 썰렁한 출입국 관리소를 가리킨다. 남한바람이 불어온 후 북한 이탈현상이 뚜렷해졌고 한중 수교후 가속화되고 있다.

혼춘 개발이 중국의 보도처럼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교통·통신 시설의 미비,봉사 및 근무태도의 후진성은 차지하고라도 두만강 주변국가들의 이해가 엇갈려 본격적인 공동개발이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모두가 자국의 항구나 도시를 중심으로 개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3백60억달러에 이르는 자원조달 문제가 걸려 있다. 한 시민은 『우레소리가 요란하지만 얼마나 비가 내릴지는 의문』이라며 아직 개발의 성과를 장담하기는 이르다고 귀띔한다.

혼춘의 최대매력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 자본과 선진기술 유지의 지리경제학적인 우월성이다. 그러나 북한쪽의 개발은 어떠한가. 우리는 북녘 동포에 대한 경협에 어느정도나 준비가 돼있는가. 연변 사회과학원의 최모 교수는 『혼춘 개발을 한국기업이나 학계가 낙관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무방비상태서 과연 상술 좋은 중국인들의 장단에 그대로 춤춰도 좋을 것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T대의 K교수는 92년 8월13일 연길 백산 호텔에서 열린 국제 학술세미나에서 『혼춘은 화수목금토 오행겸전의 진짜 황금지대로서 동북아 경제무역의 중심지로 건설돼야 한다』고 풍수지리설까지 들어가며 혼춘 중심 개발의 필연성을 역설하는 촌극을 빚었다. 일본의 학자들은 극히 조심스런 반응이었으며 러시아는 아직도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혼춘이 계획대로 개발된다면 「거대한 공룡」 중국은 남쪽끝에 이어 동북쪽 끝에 또하나의 홍콩을 갖고 한반도를 에워싸게 될 것이다. 그때 한반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특별취재반

임철순(사회부차장)

강진순(사회부기자)

조상욱(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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