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알선 전문직원상담교수제 정착/업체와 유대지속 「입사 좁은 문」 뚫어야/교수와 학생도 파행적 「추천서 주고받기」 관행 탈피를잘못된 대학교육 정책으로 졸업생들의 취직이 안되고 취업난때문에 대학교육이 더욱 망가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바늘구멍처럼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 위해 우리 대학생들은 재학기간은 마지막 1년간을 대부분 취직준비에 바친다. 매년 취업철이면 대학도서관은 전공과 무관한 암기식 취직 시험공부에 열을 올리는 졸업반 학생들로 만원이 되고 학과 사무실에서는 몇장 안되는 추천서를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대학측은 부총장급이나 고참 경영대 교수를 책임자로 취업지도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실무자들은 특별예산이 편성된 출장비를 받아 발이 닳도록 기업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이같은 벼락치기식 취업지도는 기업의 높은 문턱만 실감케할뿐 양산되는 대졸 실업자들을 구제하는데는 별 효과가 없다.
사회수요에 맞도록 각 대학의 학부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사전취직 운동보다 철저한 사후관리로 취업지도를 전문화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무리 요란해도 개선되는 것은 거의 없다. 도리어 취직준비 핑계로 졸업반학생이 강의에 빠지고 시험을 안 치르는 바람에 교육과정마저 파행운영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속칭 「수족관」으로 불리는 서강대 로욜라도서관 1층 제1열람실. 50평 남짓한 곳에 2백석을 갖춘 이 열람실은 2학기에 접어들면서 퀴퀴한 냄새와 함께 기이한 학구열에 휩싸였다.
매일 새벽 5시께부터 자정직전까지 문을 여는 이곳은 서강대에서는 가장 운영시간이 긴 열람실이다. 학교측이 따로 지정한 바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졸업반학생들이 독차지,다른 학생들은 감히 넘보기 힘든 곳이 돼버렸다.
넓은 유리창문을 통해 내부가 휜히 들여다 보이는 열람실에서 하루 20시간을 눈만 껌벅이며 한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취업준비생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수족관속의 어류와 같다. 기온이 떨어지는 10월말부터는 담요 등 침구류도 등장한다. 이곳 학생들은 천편일률적으로 토플,VOCABULARY,상식문제집만을 달달 외고 강의·시험에는 빠진다. 학점은 조교와 친숙하게 사귄 뒤 출석체크를 눈감아달라고 부탁하고 교수에게 통사정해 시험대신 리포트를 내기로 한다.
대학마다 취직공무열기로 인한 파행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졸업논문은 아예 관심밖이고 교수들도 「취직을 위해서」라는 말앞에서는 입을 다물고마는 것이 오래 계속된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S대 경제학과 C교수(51)는 이번 취업철에도 매년 겪는 불쾌한 경험이 되풀이 될것을 걱정하고 있다. C교수는 지난해 교양과목인 경제학개론을 수강한 타학과 졸업반학생의 대리시험부정을 적발,F학점 처리했다. 대학본부에 성적처리 결과를 넘기기 직전 그 학생이 말쑥한 넥타이차림으로 연구실에 찾아왔다. D기업에 이미 출근하고 있던 그는 곧 사내연수에 들어가는데 학점이 부족해 졸업을 못하면 합격이 취소되므로 잘봐달라는 것이었다. 『졸업학점도 이수 못하고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타일렀으나 『내 장래를 책임지겠느냐』는 결사적인 호소에 결국 학점을 고쳐 적고 말았다.
경상계열이나 이공계열을 제외한 소위 비인기학과의 경우 취직준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요구돼 학사관리는 아예 엉망이 된다.
유근상 중앙대 교수(국문학)는 『요즘은 4학년생에게 강의를 하기가 미안할 정도이고 과제물을 줄이거나 일찍 종강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며 『점차 대학교육이 대입고교 교육처럼 왜곡돼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강대의 취업책임자인 김준수 학생처장(경영학)은 최근 전국 2백개 기업에 인턴제·추천제 채용을 하더라도 졸업전 학생을 미리 근무시켜 학사과정에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김 교수는 『대학의 존립 목적중 하나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것이므로 취업지도도 당연히 대학의 책임』이라며 『그러나 기업들이 특정학과의 소수학생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인턴제를 악용하고 졸업학점도 이수하지 못한 학생이 취업난을 핑계로 강의를 빠지는 것은 기업과 대학의 수준을 함께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대후 4학년에 복학한 경희대 영문과 박모군(25)은 『새벽부터 도서관이 가득차고 이미 졸업한 친구들이 취직공부 한다며 학교에 나오는 모습이 당혹스럽다』며 『결국 입학때처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이 반복되는 것같다』고 말했다.
학생들 못지않게 대학측의 구직노력도 대단하다. 서울 소재 대학들도 올해만큼은 직원들이 발로 뛰며 졸업생들의 취업을 호소하고 있다. 경희대의 경우 취업정보실 담당자 2명이 9월초부터 10월까지 2백여개 기업을 방문했다. 한국외국어대 취업보조계 주임 강승창씨는 『웬만한 중견기업까지 다 뛰어다녔으나 비인기학과에는 입사원서도 못구해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하루 40여명의 졸업예정자들과 면담중인 연세대 장학복지와 윤유식씨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어학·컴퓨터 과정을 정식커리큘럼에 넣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는 신입생들의 학력고사 성적보다 졸업후 취업률로 대학순위가 매겨질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성신여대의 경우 지난 9일 무려 2천2백여개 업체에 총장명의의 「취업호소문」을 발송했다. 학교측은 이중 3백개 업체를 선정,홍보용 선물을 들고 방문하며 채용설득에 나서고 있다. 이 대학은 또 추천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모든 교수추천서를 총장이 직접 서명한 총장추천서로 대체하고 자체 제작한 취업정보지·취업상식책을 학생들에게 소그룹별로 읽게 하고 있다. 이화여대와 과학기술대 신설과 특수대학원 증설을 추진중인 것도 하락하는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만회하려는 노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취업난이 극심한 지방대의 경우 취업특별예산을 편성,타지역 기업 출장방문에 전용하는가 하면 전 보직교수에게 기업을 할당하는 등 비상체제를 운영중이다. 동아대의 경우 아예 서울에 취업출장소를 설치,담당직원을 상주시키고 있고 대구대는 담당부서를 총장직속의 「취업개발원」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각 대학의 이같은 발등의 불끄기식 노력은 학생들의 벼락치기 공부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고급실업자 양산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대 원호택교수(심리학·전 학생생활 상담소장)는 『취업에 대한 대학의 책임은 입사원서를 구해다주거나 직업기술교육을 실시하는데 있지 않다』며 『그보다는 전문직업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상담전문 교수 또는 취업전문가를 두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은 5명 미만의 취업담당 직원을 1∼2년씩 순환보직하고 있어 지도방법이 전문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취업전문지 「리크루트」의 민윤식사장은 대학이 사전취업지도뿐 아니라 졸업생들의 사후관리를 계속해 다양한 기업과 장기적으로 신용관계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 사장은 『일본의 경우 거꾸로 구인난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도 대학마다 10명 이상의 베테랑 취업전문가를 두고 기업과 졸업생 만족도를 체크하는 등 수십년의 취업실적을 사후 관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각 대학이 대기업뿐 아니라 유망중견 기업과 지속적인 인력수급 관계를 맺고 졸업생들을 내보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곤 경희대 교수(경제학)는 『대학측이 산업사회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졸업생을 양산,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중하위권 대학은 특정산업분야에 꾸준히 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특성화하고 입학정원을 대폭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기업측이 추천제 전형비율을 높이자 추천서를 놓고 졸업생끼리 제비뽑기로 나눠갖는 등 대학의 신용을 먹칠하는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전국 4년제 대학 장학실장·취업담당실무자들로 구성돼 87년부터 정기모임을 가져온 전국대학 취업지도협의회에서는 특히 추천제 입사에 대한 원성이 높다 못해 대기업들을 성토하는 분위기다. 이 협의회 회장 심태성씨(부산 수원대 장학실장)는 『올해 대기업의 추천의뢰를 받은 곳은 전국 1백36개 4년제 대학중 20여개 대학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대학에서는 실무자들이 출장을 나가 허리를 굽히고 찾아다녀도 추천서 1장 얻기가 힘들어 사실상 취업기회가 원천봉쇄된 상태』라고 토로했다.
서울대 장상호교수(교육학)는 『원칙적으로 취업은 필기시험보다 지도교수 추천과 면접이 중요시돼야 한다』며 『그러나 추천서제도는 과잉경쟁속에서 극상의 칭찬만을 늘어 놓아야해 이미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말했다.
한림대 정범모교수(교육학)는 『대학교육과정이 유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무리 높아도 실제로 개성되지 않는 이유는 대학졸업장 간판만 얻으면 교육내용은 어떤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 의식때문』이라며 『대학이 천편일률식 교육과정을 바꾸고 내실을 기해야 취업난이 교육과정을 파행시키는 악순환도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 대졸자의 일자리는/졸업자중 55%만이 관문통과/여학생 내년 더 바늘구멍될듯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이던 대졸 취업난이 또다시 급격히 악화될 전망이다.
교육부와 국립교육평가원 집계에 의하면 92학년도 대졸자 17만8천6백33명중 대학원 진학자 1만4천40명을 제외한 순수취업 희망자 16만4천5백93명 가운데 지난 4월까지 절반이 조금 넘는 9만1천4백38명이 취업관문을 뚫었다(군입대자와 제대자는 자연상쇄처리). 나머지 7만3천여명은 고등교육을 받은 실업자 신세로 누적된 취업재수생들을 합치면 15만명 가까운 대졸자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93학년도 졸업 예정자들은 50대 기업이 신규채용인원을 전년보다 21.4% 감축한데다 중견·중소기업의 도산사태마저 잇따라 사상최악의 취업난이 봉착했다.
오늘의 대졸 취업난을 가져온 주범은 80년대 초반 산업인력 수급전망을 무시한채 계속된 대학정원의 무분별한 증가다.
80년 4만9천7백35명이었던 대학졸업생은 85년 11만8천5백84명으로 5년만에 두배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대졸취업률은 65.0%에서 45.7%로 곤두박질쳤다.
여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참담하다. 80년 50%였던 취업률이 졸업생수가 1만5천8백12명에서 4만2천7백71명으로 급증하면서 29.8%로 급락했고 올해는 39.9%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공계열별 취업률은 91년의 경우 의약계 79.6% 사범계 58.5% 자연계 54.2% 인문·사회계 52% 예체능 45.7% 순으로 자연계도 아직은 절반 남짓한 숫자만이 취직이 되고 있다. 같은해 전체졸업생의 70%가,여학생은 62.3%가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 취직했으나 나머지는 대졸학력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현수·장현규·남대희·이성철·김병주·이진동기자 (사회부)
이기룡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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