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세. 82년 12대에서 불과 40세의 나이로 중앙위원에 선출돼 일찌감치 차세대 기수로 꼽혀온 인물. 호요방·호계립과 함께 일찍부터 「삼호」로 불리며 50대 개혁파로 유명했다.안휘성 속계현 출신으로 64년 공산당에 입당했고 65년 청화대학 수리과를 졸업했다. 74년 감숙성 건설위원회 부회장,80년 동위원회 부주임을 거쳐 82년 공청단 감숙성위원회 서기에 임명됐다.
82년 당시 총서기였던 호요방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로 발탁돼 84년 공청단 제1서기,85년 전국청년연합회 제6기 주석을 지냈다.
85년부터 88년까지 귀주성 서기를 역임했으며 88년부터는 티베트 자치구의 서기로 일해왔다. 87년 호요방의 실각으로 티베트로 쫓겨가는 바람에 89년 천안문사태 등 중앙정치무대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있었다.
귀주성 티베트 자치구 등 개방·개혁의 소외지역에서 일한 경험으로 비추어 앞으로 이들 내륙지방에 대한 중앙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 전망.
대표적인 개혁파로 꼽히면서도 비교적 보수파들에게도 거부감이 없는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