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3자기업」/자리안정보수 짭짤 “취업경쟁”/젊은층 잦은 휴일근무 등 「조건」 안따져/취직 친구엔 “잘살게 됐다” 부러운 눈길/최근 한국 등서 「인력」 요청… 외국진출 기회로 삼기도중국 조선족의 한결같은 욕구는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상품경제와 잘 사는 외국의 모습에 눈뜬 그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며 산다.
삼자기업은 이같은 꿈을 실현 시켜줄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장치이다. 독자(외국기업의 1백%투자) 합자(중국이 자본금 51%이상) 합작(일정비율에 따른 이윤분배) 등 삼자기업을 통해 중국 조선족은 고용의 창출과 증대,소득수준 상승 등의 혜택을 입고 있다.
중국에 대한 해외기업의 투자는 80년 8월 심천 등 중국남부 4곳에 경제특구가 설치되면서 시작됐다. 연변조선족과 한국기업들과의 합작투자는 재미동포 등을 중심으로 간접투자 형식으로 진행되다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92년9월말 현재 자치주의 1백18개 합작기업중 48개가 한국 업체와 합작,3천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재미동포와의 합작회사인 도문시 민족비닐 공장(대표 조광훈)은 휴일에도 종업원들이 나와 일을 한다. 사회주의국가에선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광경으로 한 여성근로자는 『일감이 밀려 일요일에도 일합네다』라고 말했으나 휴일근무 수당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연길시 창성가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는 허동철씨(31)는 한국기업과의 합작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젊은 기업가. 허씨는 88년 종업원 11명으로 한립와이셔츠 공장을 설립한 후 91년 4월 중국기업보다 기술이 월등한 한국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제품차별화 전략에 성공함으로써 돈방석에 앉게 됐다. 한립 와이셔츠는 현재 종업원 2백40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자치주의 외자기업중에서 가장 젊고 유망한 기업중 하나로 통하고 있다.
자치주의 TV와 신문지상에서는 허씨와 같은 젊은이의 성공 스토리가 큰 인기를 모은다.
하얼빈시 동력구의 태일정밀 유한공사는 한국의 태일정밀이 설립한 독자기업으로 중국에 있는 한국계기업 3백여곳중 유일하게 조선족만 쓰는 곳이다. 정덕재총경리(54)는 한족도 채용하라는 당국의 요구에 대해 『조선말을 알아야 일을 할 수 있는데 통역을 세우란 말이냐』고 응수한다고 말한다.
컴퓨터의 윈체스터 헤드 데스크와 반제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91년 6월 창립됐는데 여성 근로자 5백50명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첫해엔 1백8만 달러의 수출고를 기록했고 92년엔 2천5백만달러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휴일에도 일해야 할만큼 일거리가 많아 처음엔 고졸이상만 채용하던 것을 중졸이상으로 낮추고 모집도 수시로 하고 있다. 열차로 16시간 걸리는 가목사에서까지 지원자들이 몰려온다.
92년3월 입사한 총무실 직원 김송자양(21)도 가장 빠른 열차인 쾌차로 6시간 거리인 탕원출신. 월급에서 1백50원을 기숙사비로 내고 나머지 50원을 알뜰하게 저축하고 있다. 친구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부러워한다는 김양은 『4∼5년후 결혼해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만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고 말한다.
해외와의 합작은 공공기관이 총도원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연변의 경우 대외경제를 주관하는 정부기관은 대외경제기술 합작공사와 대외무역총공사 등으로 90년에 최초로 한국기업과의 합작회사인 연진합영 해산물 유한회사가 설립됐다. 연변대외 경제기술 합작공사의 이문병총경리(한족)는 『더 이상 정치적인 장애는 없다.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잣대』라고 말했다.
연길시정부와 다른 경제단체들은 한중수교가 예상보다 앞당겨짐에 따라 금년 안으로 한국에도 판사처(출장소)를 둘 예정이다.
연길시는 또 「치부할 생각이 간절한 분은 아름다운 연길로 오십시오」라는 신문광고를 수시로 내고 있는데 92년9월1일 시산하에 한국봉사 복무국을 설치하고 한국 경제인들을 경제고문으로 초빙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9·3민속절을 맞아 8월31일부터 9월6일까지 열렸던 경제무역 상담회에서는 한국 등 16개국과 1억8천68만달러 어치의 교역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 국내 인건비 상승으로 연변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연변의 값싼 조선족 노무자 수입문제가 한국 기업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합작공사의 조철준 해외부 경리(부장)는 『지난 8월 연변에 진출예정인 대구의 한 방직공장에서 1년간 연수,월급 3백달러를 조건으로 37명을 요청해와 약 2백여명이 신청했는데 남자 18명,여자 17명 등 35명이 통과,출국대기중』 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공대를 나온 엘리트 여성도 있다. 북경화직공학원을 나온 연길시의 한 방직공장 연구원 염정금양(23)은 『요즘 해외 합작기업은 보수도 많고 혜택이 좋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연변의 해외노무수출은 79∼89년에 고작 9천3백여명이던 것이 그 이후 92년5월말까지에만 20여개국 3천6백여명으로 늘어날 만큼 활발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선원인력이 모자라자 지난해부터 조선족을 선원으로 고용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초기에는 해외출국의 좋은 출구여서 연변 대외경제기술 합작공사,연길 해외노동복무공사 등을 통해 사이판 괌 등에 2천여명의 조선족 청년이 선원으로 나갔으나 육지노동의 선호추세로 신청자가 거의 없어 올해엔 추진을 포기한 상태다.
무리하게 기업확장을 시도하다 실패해 동포사회에 일대파문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조옥희씨(37·여)가 사장인 도문시의 우전 공업무역 총공사는 한때 매상고만 2천만원이 넘는 길림성 최대의 사영기업이자 조선족의 자랑이었으나 무리한 기업확장과 합작사업으로 결국 지난해 도산했다.
반면 하얼빈의 흑룡강성 민족경제 개발총공사는 규모가 크고 건실하기로 손꼽히는 조선족 기업이다. 84년 창립된 흑민경의 올해 무역액은 1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최수진총경리(43)는 여름에는 겨울상품,겨울에는 여름상품을 챙기는 역사고로 오늘의 성공을 이룩했다.
싱가포르에는 선박·무역회사와 변호사 사무소를 설립할 정도로 해외활동도 왕성하다. 최씨는 흑룡강성 투자기금회의 이사장 등 직함이 많으며 교육기금회 신문기금회 등에 대한 기부로 이윤의 사회환원도 활발하다.
흑민경의 직원 1천여명중 85%가 조선족이다. 하얼빈 중심가에 시내에서 가장 높은 22층 규모 개실 2백8개짜리 호텔 사무실 등을 갖춘 종합빌딩을 연말에 완공할 예정이다.
이 회사의 김정규 부총경리(47) 는 『자본주의경제와 무역거래에 서툴러 「비싼 학자금」 을 내면서 배워왔다』 며 『이제는 완전히 자라가 잡혔다』고 자랑했다.
지금까지 대연·청도 등에는 한국의 대기업이 많이 진출한 반면 연변에는 거의가 중소기업,소규모 합작투자에 국한돼 있다. 또 값싼 노동력은 풍부하나 전문기술 인력은 절대 부족하다.
그리고 중국의 법과 체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고 그나마 수시로 변해 혼란을 주고 있다. 주관부서도 일원화 돼 있지않고 전력·전화·교통 등 사회 기간시설도 미비한 상태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연변에 대한 투자와 합작은 단순한 경제적 가치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특별취재반
▲사회부:임철순 차장 강진순기자
▲국제부:조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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