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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학생」은 있어도/「스승과제자」는 없다(대학을 살리자: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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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학생」은 있어도/「스승과제자」는 없다(대학을 살리자:30)

입력
1992.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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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지식 주고 받기」 관계로 변모/신뢰·존경심 상실… 마주쳐도 “모른척”/학생은 겸손·교수는 교권회복… 학문발전에 최선다해야우리나라 대학사회에는 교수와 학생은 있어도 스승과 제자는 없다고 한다.

세대간 이질감과 단절의 벽이 공동체문화를 붕괴시켜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수평적 계약관계만이 형성될뿐 사제간에 끈끈한 인간적 유대관계나 따뜻한 정이 메말랐다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할 말이다.

『4·19이후 한국대학사는 끊임없는 저항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재권력에 맞서 희생과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용기있는 「시대의 양심」으로 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구성원들간의 상호믿음과 공감대 때문이었다.

○폭력충돌 빚기도

경찰의 최루탄공세에 동요하지 않던 데모대도 교수들이 야단치고 설득하면 깨끗이 해산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나 요즘은 데모대 앞을 가로막기만 해도 어용이나 권력의 앞잡이 교수로 매도된다. 교수를 만나도 인사하는 학생이 별로 없고 면전에서 담배를 꼬나물기 일쑤이다』

학과장과 학생처장 등 여러보직을 두루 거친 서울대 원로교수의 회상과 탄식이다. 그러나 학생들도 할말이 많다.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의 말을 들어보자.

『교수라는 직함 하나만으로 학생들의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다. 4·19때나 유신시대만 해도 많은 교수들이 박해를 무릅쓰고 앞장서 정치현실을 비판하는 등 스승이전에 선배로서 학생들의 귀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의 교수상은 어떠한가. 시국에 관한 대화자체를 기피하고 보신주의와 개인주의에만 몰입한 교수사회의 세태속에서 사제관계의 단절을 학생들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70년대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돌출된 세대간·계층간 갈등과 기존가치의 붕괴현상이 대학사회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잦은 대화의 장을

서울대 임현진교수(사회학)는 『산업화,도시화,핵가족화 등으로 공동체문화가 개인주의에 의해 무너지면서 교수와 학생관계는 점차 공식화된 계약관계로 변모되고 있다』며 『특히 졸업정원제 등으로 대학이 양적으로만 팽창을 거듭한데다 대학의 결집력 자체를 저해하는 정치상황으로 인해 사제간 균열현상은 가속화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80년대 독재권력에 의해 대학에 가해진 유형 무형의 통제와 간섭은 사제간의 이질적 현실관을 더욱 굳히게 했다.

극단화된 학생운동권 세력은 모든 기존권위를 파괴의 대상으로 삼아 교수들을 공경해야할 윗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적대세력쯤으로 치부,정원식 총리폭행사건과 같이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동을 스스럼 없이 저지르기도 했다.

교수가 교내에서 주차시비로 학생에게 얻어 맞는가하면 보직교수를 감금,삭발하는 등 대학사회의 패륜적 상황과 교권실추사례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불씨를 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대 최홍규교수(영문학)는 『사제관계가 정과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수직적 인간관계에서 상호 필요에 따른 수평적 계약관계로 변해가는 것은 사회전반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지적,『그러나 교육이 차지하는 사회적 의무에 비춰볼때 현재의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는 매우 위험한 수위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박상섭교수(국제정치학)는 『교수와 학생이 상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고 서로에게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게되면 거리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며 『군사부일체식의 사제관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으나 상호신뢰와 예의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만은 불변』이라고 강조했다.

수업시간에 지각하는 학생에게 호되게 야단을 치면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 버린다. 학과장실이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도 찾아가 대화를 요청하는 학생이 드물고 장학금 신청 등 필요할 때만 기웃거릴 뿐이다.

고려대 홍모 교수는 지난달 교수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학생을 때려 구설수에 올라 있다. 홍 교수가 실내에 총학생회장 선거관련 대자보를 붙인 학생에게 대자보를 뗄 것을 종용했으나 이 학생은 피우던 담배를 든채 말을 듣지 않아 뺨을 몇차례 때렸다.

이같은 사제간의 갈등분출과 대화단절의 원인을 교수들이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다.

모대학 김모양(23·영문 3)은 『학생과의 대화는 기피하면서 재단이나 외부압력에는 몸을 움츠리는 교수들을 보면 존경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며 『오늘날 진리하나만으로 학생들의 방패막이 역이 돼줄 수 있는 교수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E대 음대 이모양(23)은 『지도교수 생일이면 선물을 해야하고 교수연주회때는 할당받은 티켓을 모두 소화해내야 장래가 촉망받는 제자로 인정받는 풍토에서는 인간적인 정이 우러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부산 동아대 학생생활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결과,학생들은 바람직한 교수의 자질로 ▲친밀감(43.5%) ▲고상한 인격(25.9%) ▲충실한 강의(12.5%) ▲학술업적(3.5%) 등의 순으로 꼽았다.

그만큼 학생들은 단순한 지식전수보다는 교수와의 인간적인 만남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 섬기기」 확산

대학인 스스로 서먹한 교수학생간의 분위기를 쇄신하고 대화와 화합의 마당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학과별로 스승의 날과 제자의 날을 정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따뜻한 정을 나누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스승 존경 풍토조성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학교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수강신청방식을 놓고 교수들과 마찰을 빚었던 고려대 경영학과생들은 최근 ▲먼저 인사하기 ▲교수 앞에서 금연 ▲강의종료후 교수보다 늦게 나가기 등 「스승 섬기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연세대 「연세사랑 실천모임」 소속학생들은 매달 첫 수요일 아침에 교수들과 함께 교내를 청소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광원대 신방과 임태섭교수(37)는 올 봄 학생들과 매일 도시락을 같이 먹는 자리를 마련,40여명이 호응했으나 학기말에는 1명만이 남아 그만두기도 했다. 서울대 인문대학장보 유평근교수(불문학)는 『교수는 권위의 원천인 학문적 우수성과 도덕적 고결성 유지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학생들은 대학의 기본기능인 학문접촉을 통해 사제관계가 돈독해질 수 있도록 겸손한 자세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외대 행정학과 사제/「제자의 날」정해 평소 보은 답례/사/학과일 반드시 협의 존경실천/제

한국외대 행정학과(학과장 김인철) 교수들은 지난해부터 6월 둘째주 화요일을 「제자의 날」로 정해 정성어린 선물을 마련하고 식사를 같이하면서 사제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

교수들이 제자의 날을 지정한 것은 매년 스승의 날마다 학생들로부터 받아온 극진한 대접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이 대학 재학생과 동문들은 10여년전부터 스승의 날인 5월15일 교내 잔디밭에 보은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제자의 날 행사는 행정학과 교수들의 마음을 모아 준비한다.

다과와 음료가 곁들여진 토론회도 열어 학과 발전을 위해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한다.

특히 지난해에는 6명의 교수들이 1년간의 연구업적을 담은 논문과 저서를 학과문고에 기증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외국인 교수를 교환 교수로 초빙할 예정이다.

행정학과의 사제간 화합은 신입생환영 MT 등에도 그대로 나타나 교수·학생·대학원생까지 한데 어울려 신입생을 맞이해 다른 학과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달말께는 학과 등반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사제간의 학문적 매개를 위해서는 해마다 교수와 학생들이 「외대행정논문집」을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정원식총리 폭행사건으로 이 학과학생 1명이 구속되자 교수들은 거의 매주 구치소로 학생을 면회가 꾸짖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다.

교수들은 「제자의 허물은 그를 올바로 가르치지 못한 스승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요지의 탄원서를 법원에 여러 차례 제출,담당판사가 「교수들을 믿고 이 학생을 캠퍼스로 돌려보낸다」는 집행유예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공식적인 행사나 수업시간 이외에도 간담회,개별상담 등을 통해 대화의 양과 질을 높여가고 있을뿐 아니라 과 학생회활동도 교수와 반드시 협의할 만큼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

학과장 김 교수는 『꾸준한 대화를 통해 학문적·인간적 유대에 기초한 새로운 사제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현수·장현규·남대희·이성철·김병주·이진동기자 (사회부)

오대근기자(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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