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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이행모델?/한상진 칼럼(밖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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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이행모델?/한상진 칼럼(밖에서 본 한국)

입력
1992.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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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당직포기 선언으로 혹시하며 주시했던 민자당의 분열가능성이 역시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신당 창당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되고 있으며 온갖 억측과 가십이 난무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불과 두달 앞둔 정치권의 소용돌이가 심상치 않다. 한국정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우선 스페인 모델이 생각난다. 스페인은 오늘날 성공적인 정치이행의 표본으로 꼽힌다. 70년대 중엽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이후 77년과 79년 선거에서는 체제승계 세력인 「민주중앙당」이 승리하여 개혁정책을 추진했으나 82년 총선부터는 「사회노동당」이 집권,경제사회 민주화로 전진해 간것이 스페인의 특징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수아레스 총리의 탁월한 리더십과 실용적인 중도개혁 노선으로 정치이행의 과제를 잘 해결했던 「민주중앙당」이 왜 82년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형편없이 분열,해체됨으로써 완전 몰락의 길을 밟게 되었는가에 있다.

해답은 결국 정당의 인위적 성격에 있는듯하다. 뜻밖에 불어닥치 전환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권력층의 필요에 의해 이질적인 정파들을 하향적으로 묶은 것이 뒤에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군부와 급진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민주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갖는 한 수아레스를 중심으로 하여 일치 단결했지만,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 목적이 실현되는듯하자 내분을 거듭했고 급기야 서로 갈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스페인 사이에는 유사성에 못지 않게 차이점도 많다. 6공이 5공의 탯줄을 이은 권위주의 체제의 연속이라는 점에서는 수아레스 정권과 맥을 같이 하지만,6공의 권력구조 안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돌연변이는 우리에게 독특한 것이다. 밖에서 수혈된 소수개혁 집단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체제승계 세력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 단적인 보기다.

우리의 현실인식에 다소의 여유가 생간다면 이점은 정치제도 전반의 심각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6·29선언이 그랬듯이 집권 엘리트의 고도의 적응성과 신축성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이런 위로부터의 변화는 또한 70년 중엽이래 새로운 정체성으로 사회안에 진입한 수많은 젊은 세대의 변화욕구와 접목가능성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시사적이고 도전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렇게 볼때 현금의 정치적 소용돌이는 단적으로 말해 새로 형성된 정치무대의 중심에서 소외되었거나 불안을 느기는 보수세력의 이반으로 특징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는 민자당에는 큰 타격이 될 것이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오히려 잘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어차피 한 살림을 할 수 없는 이질적 집단이라면 깨끗이 헤어지는 것이 좋고 이를 계기로 민자당은 나름대로 새로운 위상정립을 촉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심은 이제 상투적인 정치적의 이합집산에 있다기보다 국민의 인식과 평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세력의 재결집은 정치적 주제의 빈곤속에서 새로운 판단기준을 사회집단들에 요구하는 의미를 갖지 않을까. 과거청산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재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간층의 향배에 다시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간층의 진로는 일반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일본과 멕시코는 보수정당이 중간층을 효과적으로 포섭해온 대표적 보기다. 반대로 스웨덴과 스페인은 진보정당이 중간층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포용해왔다. 한편,러시아,동유럽,남미는 중간층의 정치적 방황이 계속되는 곳이다. 우리도 현재는 크게 볼때 이 마지막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회고해 보자면 우리나라 중간층의 정치적 지향이 약한 것은 아니다. 87년 6월항쟁을 경유하면서 민주화를 지지하는 확실한 모습을 증면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뒤 여러가지 이유로 중간층의 정치적 성격이 다소 불투명해진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이 시점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젊은 세대를 포함하여 중간층에 그래도 강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가치를 선거문화의 개혁으로 연결시키는 지혜라고 본다. 한국민주화의 계속적 진전여부도 결국 여기에 달려있을 것이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스페인처럼 우리도 이번에 정권교체를 실현시킬수도 있고 수직적 권력이동을 통한 구조개혁을 성사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의 복귀는 위험하다. 감정과 편견 대신 냉철한 판단과 역사적 전망이 요구되는 때이다.

오늘의 낙후한 정치가 결국 사회의 반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좋은 정치는 사회의 발전적 잠재력을 앞서 이끌어 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잠재력이 다른 어느나라보다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공명선거를 위한 조건들도 어느때보다 성숙해지고 있다. 이 기회에 합리적 토론으로 후보를 평가하는 제도와 수단을 대거 도입하고 시민적 감시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한국형 민주화 모델의 성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때다.<서울대교수·미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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