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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들 하루 15시간 강제노역/귀순자들이 폭로한 요덕수용소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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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들 하루 15시간 강제노역/귀순자들이 폭로한 요덕수용소실태

입력
199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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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영양실조…쥐길러 단백질 섭취도/탈주기도자는 공개총살…성공한적 없어/전 군·정간부등 5만명…부주석 아들도지금까지 외부에서 거의 알려져있지 않던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구체적인 실태가 13일 귀순자 안혁(24)강철환씨(24)에 의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안기부에 의하면 북한에는 국가보위부 제7국산하에 정치범수용소12곳이 있으며 현재 북한인구의 1%에 달하는 20여만명이 수용돼 있다.

이중 안씨 등이 있던 함남 요덕군 요덕수용소는 해발 1천5백m이상의 산에 둘러싸인 오지에 있으며 반당종파분자 등 중범자의 가족·북송교포·경미한 범죄자 등 5만여명이 수용돼 있다는 것이다.

수용자들은 「가족세대」 「독신중대」 등 별도의 시설에 분류돼 기거하며 매일 새벽 5시30분부터 하오9시까지 15시간이상 강냉이농사와 금광 산나물 목재채취 등 외화벌이를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된다.

이들은 성인 1인당 하루 주식으로 강냉이 3백60∼5백50g과 부식으로 소금만을 제공받으나 이것도 수시로 작업성과 등을 따져 공제,대부분이 산나물이나 풀뿌리 등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씨 등은 이때문에 수용자 거의 전부가 심각한 영양실조와 결핵·간염 등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지난 88년3월에는 돗버섯을 주워먹은 일가족6명이 모두 사망한 일이 있었으며 일부 숭요자는 방에 쥐사육장을 만들어 단백질을 섭취하는 등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다고 폭로했다.

수용소에느 진료소가 있으나 의사가 없어 매년 40∼50명씩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주거시설은 막사나 흙·판자 등의 가건물에 다다미로 바닥을 깔았으며 하루2차례 8시간만 전기가 공급되고 공동변소에 화장지가 없어 강냉이·콩·호박잎 등으로 대용하는 실정이다.

또 수용기간내내 모포1장과 동복1벌만 공급되며 내의는 일절 지급되지 않아 한겨울에는 모두 조각천으로 얼굴과 몸을 싸고다니는 등 처참한 몰골을 하고있다.

요덕수용소는 전기철조망과 함정으로 두러싸여있고 무장인민 경비대원 1천여명이 경비를 하고 있는데 매년 15명정도가 탈출을 기도하나 대부분 현장에서 사살되는 등 성공한 예는 없다는 것이다.

도주를 기도한 자나 보위원과 충돌한 자 등은 수용소 주민이 전원 집합한 장소에서 총살로 공개 처형되는데 이 숫자도 매년 15명정도이다.

수용소출소때는 수용소내의 생활을 일절 누설치 않는다는 서약서를 쓰며 이를 어길 경우 재수감된다는 경고를 받는데 출소해도 폐인이 되거나 탄광·집단농장으로 배치되고 공민증에 별도기록이 표기돼 일반 사회활동에 계속 제약을 받는다.

안씨 등은 요덕수용소에 해군사령관 상장(중장) 방철갑(56)가족, 김정일의 김일성 종합대 정치경제학부 동기동창인 당군사부 과장 홍순호(51),국가보위부장 김병하의 딸,부주석 이종옥의 막내아들 이만호(35),전리비아대사 양승룡(56) 등도 수용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서울대 졸업후 독일에 유학하다 북한공작원에 포섭돼 활동하던중 지난 4월 자수한 재독간첩 오길남씨(50)의 가족들도 지난85년입북한뒤 87년부터 이곳에 수용돼 다른 수용자들과 똑같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북송교포와 일본인처 등은 수용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더욱 혹독한 괴로움을 겪고있다. 이중에는 전 조총련 중앙위 고위간부 한학수(67) 교토본부 위원장 윤도구(78) 가족 등도 포함돼 있으며 이들 가족중 상당수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수용소안에서 사망했다.

안씨는 지난 86년6월 간첩혐의로 평양용성구역 국가보위부 마람비밀초대소에서 조사받을 당시 월북자 5명을 만난 사실을 공개,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지난 85년5월 리비아에서 월북한 대우기능공 김종필(35),86년4월 싱가포르서 입북한 문영빈(62·동일기술공사 해외사업본부장),83년4월 월북한 김성배(66·아주토건전무)등으로 모두 혹독한 조사를 받은뒤 행방불명 됐다는 것이다.

안씨는 월북자는 한달동안 북한의 명소와 산업시설을 견학한뒤 기자회견을 하고 이후 한달동안 전국의 각종 군중대회에 참여,남한을 비난하는 강연을 하는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후 6개월동안 조사를 받은뒤 특별감시 대상으로 분류돼 집단수용돼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채 강요된 행사에만 동원된다는 것이다.

안씨는 이때문에 월북자는 예외없이 월북을 후회,도주기회만을 노리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 90년3월에 월북자 3명의 집단탈출 사건이 발생,국경봉쇄와 전국적인 검문검색이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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