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양심과 권위는 대학의 생명이다. 학문과 대학의 권위는 양삼이 밑받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신뢰와 존경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이것을 잃으면 학문도 대학도 아니다. 지식판매상이나 학위판매업으로 전락하기 알맞다.학력 우위의 우리 사회에선 대학이 차지하는 무게가 매우 높다. 대학진학 자체만으로 인생항로의 고비로 삼으며 학위를 신분의 상징으로까지 여기는 사고가 드세다. 학문의 연찬이나 성과보다 학위의 등급을 먼저 따지는 경향마저 있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대학은 양적인 팽창을 거듭하며 질의 저하를 우려하게 되었다.
우리는 대학을 성역으로 보지는 않는다. 언제라도 과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대학에 한결같이 바라는 것은 학문하는 양심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입시부정이 아무리 사소한 경우라도 큰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문에 거짓이나 억지가 통하면 끝장이나 다름없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선 국내 박사에 대한 신뢰와 권위가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것 같다. 외국의 박사학위라면 선뜻 받아들이면서 국내 학위는 내려보는 자기비하의 버릇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이 반드시 배외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내의 학위가 그만큼 권위를 확립못한 이유도 있을줄 안다.
어느 대학에서 민망한 추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박사논문을 제출할 고위 공직자가 낸 논문 계획서가 부실하다고 비판한 교수를 추천교수가 폭행했다. 대학과 우리 학문자세의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망신이 아닌가. 논문을 낼 고위 공직자는 강의 출석에도 성의가 없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박사학위 취득은 학문연구보다 출세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저의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절로 생긴다.
폭행한 선배교수도 그렇다. 학문의 양심은 끊임없는 비판과정을 거쳐 확립되는 것임은 스스로 알고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성인 특히 대학교수가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그 무자격과 품위의 결함을 드러냈다고 보아 무방할줄 안다. 어쩌다가 대학이 이 지경으로 황폐화되어 가는지 암담하기만 하다.
교수는 많아도 교수다운 교수는 많지 않다는 세간의 개탄이 결코 과장이 아니지 않나하는 우려감도 지울수가 없다. 관련대학 스스로가 사리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대학의 사명과 본질에 대한 각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태와의 영합은 차단되어야 한다. 대학은 영달과 출세와 간판의 도구가 아니다. 학문의 양심만이 대학의 귄위를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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