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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안읽는 사람/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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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안읽는 사람/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2.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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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안읽는다니 무슨 일로 안읽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잘 안읽는다니 무엇 하느라고 안읽는단 말인가. 책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가. 책 때문에 패가망신한 적이라도 있었던가. 책을 읽어 배탈이라도 났던가. 책을 만지면 옴이라도 오른다던가. 책 냄새에 독기라도 있는가. 책장이 무거워 넘길 기력이 없는가. 책이 비싸서 살돈이 없는가. 책방이 멀어서 찾아갈 수가 없는가. 책방에 하도 책이 많아 읽을 책을 고를 수가 없는가. 도사관에 가니 읽을만한 책은 모두 대출중이던가. 아니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어 버렸는가. 대관절 무엇때문에 우리니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인가. 조사결과 우리나라 성인 1백명중 60명이상이 한달가야 책을 한권도 안읽는다고 한다.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책 읽을 시간말고 무엇을 할 시간이 남아 있단 말인가. 술집에 가서 술 마실 시간은 남아 있을 것이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를 시간은 남아 있을 것이다. TV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시간은 남아있을 것이다. 몇이 모여 앉기만 하면 고스톱 칠 시간은 남아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들을 다 빼고나면 책 읽을 시간은 없을 것이다.

책은 남는 시간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는 시간으로 읽는 것이다. 책을 안읽는 사람에게 책 읽을 시간은 고이지 않는다. 책 읽는 일 말고 더 시간을 아껴 써야할 일이 무엇인가. 책을 안읽기로 한다면 시간은 아무리 남아도 그것은 썩은 시간이다. 시간의 부패다. 악취나는 시간이다.

골프 연습장에 가보자. 새벽이고 저녁이고 기를 쓰고 「절차탁마」하는 사람들. 독서율은 최하위지만 골프인구의 평균실력 수준은 아마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상위일 것이다. 골프를 남보다 못치는 것은 부끄러워서 날마다 많은 시간을 연습장에 버리면서 책을 남보다 안읽는 것은 부끄럽지 않아서 몇날 몇달을 가도 책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인가. 도대체 책 안읽는 것 말고 더 부끄러운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도 부그러운 줄을 모른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병리다. 책을 안읽는 사람은 남앞에 발가벗은 듯이 부끄러워야 한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을 미개인이라고 한다.

각 가정에는 현대문명의 이기들로 가득 차 있다. 번쩍이는 가구나 전자제품이 없으면 창피하다. 그러면서도 집안에 책 한권 꽂혀있지 않는 것은 조금도 창피하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사는데 쓰는 돈은 1년에 가구당 고작 1만원 남짓이라고 한다. 이러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바로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수치를 가르친다. 그러기 전에는 안배워도 아는 원초적 수치만 있을 뿐이다.

책을 모르는 책맹은 글을 모르는 문맹보다 더 위험하다. 문맹은 자기의 무지를 자인하지만 책맹은 자신이 무지한줄 모른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없다. 무지를 모르므로 올바른 지식이 없는 지문은 해악이 되는 줄도 모른다.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글을 무엇하러 배우는가. 글을 배웠으면서도 책을 안읽는 것은 인생의 퇴학이다.

수험공부 하느라고 어릴때부터 독서습관을 기르지 않은 것이 책을 기피하는 원인의 하나라고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수험공부하는 습관은 길렀다. 지금이라도 무슨 시험이 있다고 하면 당장 책을 펴들 극성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바로 오늘 시험이 있다. 인생은 영원한 경쟁이다. 매일 이 시험이다. 수험공부하듯 늘 책을 들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을 까닭이 없다.

고학력사회라고 한다. 그것을 우리는 우쭐해 한다. 학력은 책력이다. 읽은 책의 총화다. 사상누각같은 우리의 고학력의 탑은 언제 무너질지 위태하다.

가끔은 서점에 가보라. 서가에 꽂힌 책들이 벽에 걸린 초상화처럼 당신만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책들이일제히 쏟는 시선에 현기증이 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책을 안 읽는다는 증거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사람이 책을 주시한다. 오늘 당장 책 한권의 첫장을 읽기 시작하지 않으면 어느 서점에선가의 책들이 항상 당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책을 안읽는 사람 입에서는 오래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사람처럼 입내가 난다. 근접하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당신은 그 사람만큼 같이 어리석어질 것이다. 그런 사람과 대화를 공통의 언어가 없다. 전혀 다른 국어를 쓰는 외국인끼리나 마찬가지다. 당신은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달아나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 나라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무지가 지혜보다 더 강한 사회다. 모르는 것이 힘인 세상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목청이 더 크다. 평생가야 책 한권 읽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호주머니 속에 돈소리나 짤랑대며 거들먹거리고 다닌다. 그래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그러는 사이 나라는 부식되어간다.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나라는 금방 녹이 슨다. 책을 안읽는 국민은 나라의 공적이다. 반국가사범이다.

어제 10월11일 「책의 날」에 책을 손에든 사람은 몇이나 될까.<본사상임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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