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수업몸살”/교재는 부족하고/학생 한글 모르고/교사 자꾸 떠나고/동포학생 「중국학교 전학」 갈수록 증가/학부모·동문등 “뿌리지키자”… 장학금·후원금 지원에 온힘중국 조선족은 84년에 채택된 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법에 의해 교육계획,학교설치,학제,학교운영 형식,교육과정안,교수용어와 학생모집 방법 등을 중앙정부가 위임한 범위에서 자주적으로 결정,민족교육을 발전시키고 있다. 85년에 반포된 연변조선족 자치조례는 민족교육에서의 자치권을 법적으로 규정했으며 88년에 반포된 연변 조선족 자치주 조선어문사업 조례는 조선어 학습에 필요한 규정을 두고 실시토록 하고있다.
그러나 오늘날 민족교육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조선족의 집거지역인 연변은 그래도 낫지만 산재지구일수록 어려움은 더 크다.
공통적인 난관은 사회변동에 따른 학생수 증감,한족학교로의 학생이란,조선어·한어 2중 교수로 인한 학생들의 수업부담,교재난 등이며 조선어문을 모르더라도 중국사회에서 불편이 없거나 오히려 더 유리하다는 3·4세대의 의식도 장애가 되고 있다.
흑룡강성 하얼빈 제2조선중의 조선어문담당교원 최송원씨(60)는 『우리말 가르치기가 외국말 가르치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4백여명중 70%가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학생들이어서 수업시간에 우리말로 물어보면 중국말로 답이 돌아온다.
○한반 2∼3명 공부도
그런 학생들에게 민족교육출판사가 펴낸 교과서는 너무 어려워 활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글짓기대회 시낭송대회 등 과외활동을 통해 어문교육을 보완하고 있다.
또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의 민족어문교육 금지정책은 시정됐으나 부작용과 폐해가 아직도 말끔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고교과정까지 함께 운영하는 완전 중학교인 이 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이 문화대혁명 기간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더욱 큰 문제점은 학생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조선어문 교연실 조장으로 이 학교의 조선어문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최씨는 교원들의 처우가 낮은 점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교원생활 40년으로 연말에 정년 퇴직하게 되는 최씨는 최고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으나 그래봐야 3백50원(한화 3만6천7백50원)에 불과하다.
흑룡강성의 동남방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계서시가 지난 7월 실시한 민족교육 정황조사에서도 ▲학생수 감소▲ 학교의 지나친 분산 ▲교육관리 체제의 비현실성 ▲교원대오의 불안정 등 문제점이 확인됐다. 이농과 조선족 마을의해체 등으로 인해 계동현 계림 조선족 중학교에서는 92년의 경우 졸업예정자의 32%인 53명이 졸업전에 학교를 떠났다.
계동현 전체의 조선족 중·소학교에서 91년 11월∼92년 3월에 떠난간 학생은 1백87명(중학 1백46명,소학 41명)으로 집계됐다. 더 시골인 성자하구 영흥촌에서는 4∼6세 학령전아동 78명중 26명이 한족유치원에 들어갔다. 7∼13세의 학령아동 1백16명중 조선족소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40명에 불과하며 중학교에 입학한 14명을 제하고 62명이 한족학교로 가버렸다.
또 계서시의 조선족 농촌에는 전체 학생수가 50명도 안되는 소학교가 8군데나 된다. 어떤 학급은 학생수가 2∼3명밖에 안되고 그 바람에 교육의 질이 낮아져 졸업반 가운데 낙제생이 30∼40%나 된다.
계동현의 중·소학교에서는 91년초부터 1년여 사이에 28명의 교원이 교육계를 떠났고 계서시의 중학교에서는 교원 6명이 교직을 버리고 남방경제특구로가 취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하얼빈시 도리조선족 중심 소학교는 매년 학생수가 늘어남에 따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 강원석교장(60)에 의하면 지식분자 공인 기업가 상인 등의 증가,농촌인구의 도시유입으로 인해 도심지역에 있는 이 학교의 학생수는 89년에 2백30명 가량이던 것이 92년에는 6개학년 10개반 4백20명으로 늘었고 학급당 인원이 50명인 「콩나물 교실」도 있어 자연히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어문교육의 어려움은 이곳도 마찬가지여서 하얼빈 시내의 14개 소학교가 합동으로 낭독,이야기 시합 등을 벌이거나 1년에 2회 교내 붓글씨대회를 열어 민족언어·문화를 배우는 여건조성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소비도시로 기형성장해가는 연길에서도 학생수 증가가 교육현안이다.명문 조선족 중학교인 연변1중(중점고등중학교)은 학생수 3천명의 거대학교가 됐으며 입학경쟁률이 1백대 1에 육박한다. 연길시에서는 매년 소학교 1개,초급중학교 1개씩을 새로 지어야할 만큼 학생수가 늘어 한정된 교육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85년 5월의 「교육체제 개혁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조선족 교육에서도 학제 재검토,조선어 중국어외에 외국어(영어)까지 배워야하는 중학생들의 학습부담 감소방안 등이 본격 논의되거나 시행되고 있다.
중학교의 조선어문 교과서중 한자어 단어가 70%,이중 동음이의어가 50%나 돼 학생들의 독해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발견되자 자치주민족 교육개혁판공실은 용정 5중에 실험반을 편성,90년 8월부터 한자혼용 교수실험을 실시했다. 1학년때 조선어 등 5개 과목,2학년때 기하 등 5개 과목을 추가해 실험교육을 실시한 결과 실험반의 평균 성적은 65.6점,비실험반의 성적은 31.2점으로 2배이상의 차이가 나 한자혼용 교수방법이 확산되고 있다.
또 하얼빈의 도리중심 소학교는 91년 5월부터 유치원 병설학교 신축계획을 추진,2백20만원의 성금을 모아 50년이 넘은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게됐다. 유치원과의 연계교육이 실시되면 한족학교로의 이탈현상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학교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 학교뿐만 아니라 각 조선족 학교의 학부형회 후원회,교육협조위원회 교육기금회 선배장학회 졸업생총회 동창회 등 학부모 동문들의 교육지원은 한족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활발하다.
학생들의 조선족 학교이탈,도시유입 증가 등의 대책으로는 정규학교가 아닌 강습소 형태의 조선어 학교도 운영되고 있다. 89년 4월 개교한 북경조선어학교는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과 민족을 알게 하려고 설립된 것으로 천진 심양 석가장 장춘 하얼빈 목단강 단동 무순 등지에서도 운영되고 있으며 상해 대연 등에서도 설립 움직임 일고 있다.
○한글 강습소 잇단 개설
일요일에만 중앙민족학원 등 시내의 3군데에서 운영되는 북경 조선어 학교의 92년 8월 현재 학생수는 4백50여명으로 65세 할머니까지 있다. 92년 4월 3년과정을 마치고 첫 배출된 졸업생 1백6명은 한국회사에 통역으로 취업하는 등 보다 나은 직업을 갖게됐고 이 학교는 지역문화활동의 중심지로 정착됐다. 또 조선족끼리 모이다보니 남녀간에 정이 들어 이민족과의 결혼도 방지되고 있다.
황유복 북경조선어학교장(49·중앙민족학원 부교수)은 조선족 학교가 전무한 북경에서 이 학교가 거두고 있는 성과를 소개하면서 『한족학교에 다니더라도 일요일엔 조선어 학교에 나오라고 학생들을 설득한다』고 말했다.
황 교장은 또 조선어문 경시풍조 등 현재의 상황을 민족교육의 위기로 진단하고 『조선족이 사는 곳마다 조선어 학교를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은 한국의 교육지원을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지원은 「교육은 반드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85년 5월 교육체제 개혁에 관한 중공중앙위 결정)는 중국 조선족 교육의 특수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최영표 홍영란 연구원이 91년 12월 발표한 논문 「재중국 한인교육의 실상과 지원방안연구」도 민족동질성 회복,현지 사회에서의 적응발전 등 두가지 측면에서 교육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며 중국 조선족을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지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소수민족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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