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서 정부개혁 정책 비판 “눈엣가시”/내각에 보수파 다수… 구심점 역할도 우려「불가근불가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관계를 흔히 이렇게 부른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옐친을 발탁,공산당 정치국원 후보겸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에 앉혔고 옐친은 지난해 쿠데타 와중에서 고르바초프를 구해냈다. 불가원의 관계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87년 11월 자신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옐친을 정치무대에서 추방한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의 정치적 재기를 막았다. 옐친도 절대적인 국민의 지지를 이용,고르바초프 정권을 끊임없이 괴롭히다 결국 크렘린궁을 빼앗았다. 불가근의 관계다.
이러한 두사람의 관계가 최근들어 급격히 무너지면서 감정싸움이 가열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이 7일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보루인 고르바초프 재단건물(전 공산당중앙위 건물)에 대해 몰수명령을 내림으로써 두사람 관계는 루비콘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표면상 옐친 행정부가 지난 2일 내린 고르비의 출국금지 조치와 같은 맥락에서 취해졌다. 공산당 활동 금지령과 관련한 법정증언을 고르비가 거부하고 있는데 대한 보복조치다.
옐친 행정부가 다소 치사한 방법까지 불사해가며 그를 법정에 세우려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고르바초프를 완전히 매장시키려는 의도에서다. 과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스탈린을,브레즈네프가 흐루시초프의 실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전임 통치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듯이 옐친은 고르비의 법정증언을 통해 그의 입과 귀,손발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이는 고르비 집권 6년여의 발자취가 그만큼 선명히 남았다는 점을 반증한다.
고르비는 실제로 몰수명령을 받은 고르바초프 재단을 중심으로 국내외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해외여행에서 국빈대접을 받고 있으며 그를 만나려는 주요 인사들이 줄을 서있다.
특히 고르비는 옐친 정권출범이후 가장 강력한 반체제 인사로 등장했다. 그는 옐친의 정권기반인 독립국가연합(CIS) 체제와 가격차유화,민영화 조치로 이어지는 일련의 급진개혁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옐친의 이번 조치는 자신의 현정치적 입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아제르바이잔이 CIS탈퇴를 선언하고 러시아의 급진개혁 정책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는 등 옐친 정권을 현재 벼랑끝에 몰려있다.
옐친이 지난 6일 최고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개혁파 각료 3명의 해임과 개혁속도의 완화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옐친은 지난 5월 가이다르 내각에 히쟈 부총리 등 범보수세력 진입을 허용한데 이어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다수의 범보수인사를 새로 영입할 방침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범보수 세력의 정신적 지주인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지 않는다면 옐친은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옐친 대통령의 고르바초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지 않는다면 옐친은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옐친 대통령의 고르바초프 매장 전략은 정권보수화 경향에 따른 정국불안정의 불씨를 사전에 없애려는 정지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의 전략은 다소 유치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옐친은 지난해말 고르바초프와 합의한 정권교체 시기를 어기고 보름전에 크렘린 진무실을 전격 점령했는가 하면 연초에는 고르바초프에게 양도한 대통령 전용차 「질」을 회수했다.
또 한국과 이탈리아 방문을 앞두고 그의 여권을 빼앗았고 이번에는합법적으로 소유권을 인정한 재단건물을 몰수했다.
고르바초프가 옐친의 재야시절 그를 매장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와는 격이 다르다. 영원한 라이벌이자 협력관계인 두사람의 관계단절은 러시아나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이진희기자>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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