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토속성 문학접목/현 보스턴대 교수… 극작가·화가도 겸해/「신대륙발견 5백주년」에 큰의미 부여9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데레크 월코트의 문학은 카리브해의 자연과 이주민으로 구성된 특수한 역사에 대한 관심,그리고 이 안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하는 열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닿을 내렸던 서인도제도 출신으로서 그가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는 것은 신대륙 발견 5백주년의 의미를 더욱 새롭게 하고 있다.
그의 시들은 은유와 이미지가 다양하고,유럽문화와 아프리카 후예로서의 감각이 조화되면서 그를 영미 문학계의 기린아로 만들었다.
90년 발표한 장편 서사시 「오메로스」는 이러한 그의 문학경향이 집약된 작품이다. 카리브해 지방의 구 전설화를 시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아프리카 노예들의 꿈과 모험이 장엄하게 표현돼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 작품을 통해 호머 포 마야코프스키 그리고 멜벨을 함께 볼 수 있다』고 평하면서 『역사적인 안목과 다양한 문학을 접목시킨 뛰어난 시들을 발표했다』고 그의 수상이유를 밝혔다.
86년에 출간된 희곡 「마지막 사육제」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최근세사 20년을 다루고 있다. 중미라는 특수한 역사를 가진 지역의 사람들이 느껴야 했던 슬픔과 애환,자랑스러움이 특유의 시적 상상력에 녹아있다.
1930년 영국인 아버지와 아프리카 혈통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작품속에서 카리브 원주민의 토속적 색채를 짙게 반영하고 있다.
연극과 오페라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아버지와 유명한 사회운동가로서 방송작가로도 활동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문학적 자질을 보였던 그는 18세때 「25편의 시들」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세인트루시아의 메리대학과 서인도제도대학을 나온 그는 53년 트리니다드 토바고로 옮겨 작품활동을 계속했으나 62년 「푸른밤」을 발표할 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트리니다드 토바고로 이주한 이유를 『대도시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세인트루시아에 나의 생활을 계속할 출판사가 부족한 실제적 상황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59년 희곡에 관심을 가지면서 「트리니다드 연극연구회」를 결성했는데 이 단체를 통해 많은 수의 희곡을 발표했다.
이와함께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하다가 「트리니다드가디언」지에서 예술평론기자로 활동했으며 60년대들어 전업 작가로 들어섰다.
그의 문학적 자질은 인종이 다른 부모로부터 느낀 개인적 감성과 감리교의 가풍속에 몸에 체득한 엄격함으로부터 생겨났다.
세인트루시아의 주민 대부분이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혹독한 노동에 시달린 노예의 후예인데 그의 어머니 역시 노예의 후손이라는 점도 그의 문학활동의 내용을 결정짓는 요소로 작용했다.
87년 노벨문학상을 탔던 러시아 출신 망명자인 조세프 브로드스키도 『평론가들은 월코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인정하기를 주저했다』고 말한바 있다.
현재 미국 보스턴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화가로도 활동할 정도로 다재다능하다.<이현주기자>이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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