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주부」들 첫발에 “수렁”/돈 많고 시간 많고… 「꾼」전락/노름빚에 패가망신·이혼 속출/심리적 압박 정신질환 고통도지난해 2월 서울 H여고 2년 권모양(17) 남매는 이웃 집에서 시가 2만원짜리 여자 손목시계를 훔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심장병환자인 아버지(43)가 공사장에서 벌어온 몇푼 안되는 노임을 도박판에 쏟아넣던 어머니(42)는 수백만원의 빚을 졌고 남매는 등록금 7만5천6백원을 낼 길이 없었다.
권양 남매는 노름빚을 못받게된 사람들이 가재도구를 들고가고 어머니마저 마지막 재산인 금반지 목걸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챙겨 나가던 날 학교의 등록금 독촉전화를 받자 저도 모르게 도둑질을 하게 됐다.
넉넉하게 살아온 수의사 부인 김모씨(54·서울 마포구 서교동)는 지난해 가을 아들(29)의 결혼식장에 폭력배 3∼4명이 나타나 노름빚 5백만원을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까무라쳤다.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된 딸은 그 충격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다니던 대학을 중퇴해야 했다.
지난 3월 도박판에서 9백만원의 빚을 진 이모씨(39)는 제날짜에 돈을 갚지 못했다가 꽁지꾼 2명에게 여관으로 끌려가 강간당한 뒤 『남편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수차례 받았다.
사업가 부인 정모씨(53·서울 마포구 동교동)는 고스톱으로 거액을 날린 뒤 본전을 찾으려고 하우스에 드나들다가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이혼당했다.
주부도박의 폐해는 광범하고 심각하다. 남자가 도박에 빠지면 가정이 흔들리지만 주부가 도박에 빠지면 가정이 무너진다.
주부도박은 돈 많고 시간 많은 유한계층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남편과 자녀가 없는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는 주부들은 중년기의 허무감까지 겹쳐 고스톱판에 끼게되고 그중 일부는 돈 잃고 몸버리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전문도박꾼이 돼간다.
자식의 대학등록금까지 쓸어 넣었던 김모씨(50)는 아침이면 화투패로 그날의 운세를 점쳐보고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택일을 부탁할 정도이다. 또 재수굿을 벌이거나 수십만원짜리 부적을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전 국회의원의 부인 이모씨(50)는 도박에 미쳐 집을 나온 뒤 하우스에 「바카스」로 들어가 담배 술심부름을 하면서 구경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돈을 잃고 이혼당한 주부들은 스스로 하우스를 차리고 모집책이 되기도 한다.
90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에서 보증금 45만원·월세 10만원에 방을 얻어 하우스를 차린 박모씨(48)는 폭력배 2명을 꽁지와 문지기로 고용한 뒤 부유층 부녀자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자릿세와 차용금이자 명목으로 3억여원을 뜯었다.
일수놀이업자인 서모씨(54)는 가출한 뒤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에게 보석이나 집문서를 담보로 자금을 대주면서 1백만원당 10만∼15만원의 이자를 챙겼다.
투기로 떼돈을 번 부녀자나 상류층부 도박단이 늘어나면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장소도 다양해 졌다.
남한산성 양평 금촌 등 교외나 경기일대 별장은 물론 도심곳곳의 사우나 한증막에서 목욕가운 차림으로 패를 돌리는 주부들을 자주볼 수 있다.
바깥을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큰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진 고급빌라 2층이나 CCTV(폐쇄회로 TV) 비디오초인종이 부착된 저택 등도 많이 이용된다.
지난 2월 구속된 노모씨(43·용산구 동부이촌동) 등 40명은 하루에 20만원씩 사용료를 내고 강남일대의 아파트 10개를 빌린 뒤 다방 호텔 등지에거 만나 고급승용차로 이들 하우스에 도박,1만∼1백만원짜리 현금대용 딱지로 48억원 상당의 아도사키판을 벌였다.
주부도박꾼들은 흡연 심리적 압박감 불면 음주 약물남용 등으로 인해 위장병 신경성질환을 얻기 십상이다.
20년 동안 도박에 빠져 집을 팔고 전세 사글세로 전락한 정모씨(56)는 지난해 10월 노름빚때문에 길거리에서 꽁지들로부터 심한 욕설과 수모를 겪은 뒤 충격을 받아 3개월간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지난 9월 서울경찰청에 잡혀온 곽모씨(30)는 조사받는도중 10분간격으로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도박중독자는 좀처럼 도박을 끊지 못한다. 직장일이 바쁜 남편들은 아내를 닦달하고 손찌검도 하지만 곁에서 돌봐줄 여유는 없다.
도박전과 3범이 돼버린 공모씨(53·용산구 보광동)는 경찰에 연행될 때마다 『또 도박을 하면 손목을 끊겠다』고 모질게 다짐했지만 여전히 관광여행 병문안 등으로 가족을 속이고 음식점 여관 등을 돌아다니며 고스톱 포커판을 벌이고 있다. 「도박의 손목」은 그렇게도 끊기가 어려운 것이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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