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국무총리의 역할과 기능은 너무나 빈약하다. 실질적인 권한을 두고 얘기한다면 특정분야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보다 결코 나다고 큰 소리칠 수 없는 자리이다. 헌법상으로는 각료 제청권이 있으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의해 그 절차마저 묵살당한지 오래이다. 이번만은 예외로 국회의 인준을 받은 새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한다니 두고 봐야겠다. 그러나 총리 지명 훨씬 이전부터 개각의 구체적인 명단이 청와대에서 나오고 있는 걸보면 이번에도 역시 형식절차를 갖추는데 그치고 말 것 같다.우리 정치현실은 대통령을 정점으로하여 여야 정당 지도자들에 의해서 언제나 요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일이 터져도 책임질 줄 모른다. 책임을 가장 통감해야할 대통령은 「유감」이라고 사과 한마디하면 그만이고 정당에서는 언제나 「내각총사퇴」나 「개각」을 주장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표정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언제나 희생양이 되어 물러나는게 국무총리라는 자리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언제나 마지막 수습책은 총리를 바꾸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언론도 국민도 그것이 최상의 방안인양 대서특필하고 떠들어댄다. 관계장관에게 지시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총리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는 안건에 의례적으로 사회봉이나 두들기는게 고작인 총리에게 모든 책임을 몽땅 뒤집어 씌워 보내는게 우리의 솔직한 정치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하나같이 단명이요 불명예 퇴진이다. 국민으로 부터 박수받고 나간 총리는 하나도 없다. 학계와 국민으로부터 괜찮은 인물이라고 평가를 받고 총리로 취임하지만 마지막엔 언제나 상처투성이로 물러나고 마는 것이다. 가까이 5공부터만 하더라도 정원식 노재봉 이현재 김상협씨 등 여러 존경받는 학자들이 총리로 등용되었지만 나올때는 언제나 정치때가 묻은 희생양으로 버려져야 했다.
이번에 중립내각의 새 총리들이 지명된 현승종 한국교총회장(한림대 총장)도 아마 이런 저런 이유에서 처음있는 그 자리를 고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대 총리를 거의 모두 구성 정치권으로부터 서운한 대우를 받은 책임의 일부는 그들 스스로가 져야한다. 권력구조상으로 힘을 쓸래야 쓸 수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처음부터 주저 앉서는 안된다. 최소한 법에 보장된 권한만이라도 제대로 찾아서 행사해야 한다. 청와대 비위 맞추고 여야 정당들의 눈치 살피는데 신경쓰다 보면 아무일도 제대로 손 못대고 결국 희생양으로 쫓겨나게 마련이다.
새 총리로 8일 국회에서 임명동의를 받게될 현씨는 인격과 덕망과 소신에서 존경받는 학자로 알려진 인물이기에 새로운 총리상 창출의 기대를 걸어본다. 오는 12월의 대통령선거를 공정하게 치러야할 중립내각의 총리이고 퇴진날짜까지 이미 정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소신껏 하기에 따라서는 정치 소모품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은 듣지않아도 될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첫 실험에 들어가는 중립내각을 무조건 흔들 일이 아니라 역사에 남는 깨끗한 선거를 치르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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