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가 앞서 김낙중 간첩단사건에 이어 「남한조선노동당」 결성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종합 발표했다. 간첩망 가담자 3백95명에 95명을 검거해 62명이나 구속하고 나머지를 쫓고 있다니 너무나 놀라워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북한 총리가 수시로 왕래하고 있고,남포조사단이 바로 이날 입북했으며,모두가 10년내의 통일성사를 확신하고 있는 이때에 터져나온,남노당이래 최대라는 이번 대남 간첩단 사건을 우리 스스로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척 곤혼스럽고 분노마저 치민다.우리의 그런 놀람과 분노는 남북화해·불가침·교류합의서에 서명까지 하면서 대화와 협력을 앞세운 북한이 국제공산주의가 몰락하는 지금에 와서도 대남공작과 무장 적화통일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초점이 맞춰진다. 이래서야 진정한 남북화해와 협력이 조만간 과연 이뤄질지가 의심스럽고 아울러 기대만 앞세워 산만하게 추진되고 있는 대북대화와 교류의 신중한 재점검 필요성마저 제기된다 하겠다.
하지만 북한이 그런 독재·과격정권인줄 우리 모두가 지금껏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도 빈말이 될 것이다. 자유민주국가가 있고,안보전담 특수기관이었으며,6·25남침이라는 뼈저린 경험마저 있는 우리이고 보면 북한간첩망이 이 지경으로 오랫동안 속속들이 파고들어 암약할 수 있도록 결과적으로 방치한 책임을 누구에게 미룰 것인가,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 권력서열 22위의 거물 여간첩이 10여명의장관급 수하간첩을 거느리고 10여년간 종횡무진 암약,합법정당 창당을 지원하면서 남한조선 노동당을 결성했다고 한다. 그런 암약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우리사회의 의식이나 조직 및 기관운용에 큰 구멍이 뚫려있었음에 다름아니다. 이번에 안기부가 큰 일을 해냈다지만 그동안 진작 적발해내지 못한 아쉬움은 분명 남는다. 구체적으로 구속된 김낙중·황인오씨 등 거물가담자들은 과거부터 당국의 감시·내사 대상인물이었던 것이다.
국민의 대북경계심 해이도 분명 문제가 된다 하겠다. 이번 발표과정에서 안기부가 특히 강조한 것중의 하나가 대규모 간첩망에 대한 일반신고가 전무했고,더러는 남파간첩임을 알고는 오히려 기꺼이 협력하는 사례마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지적은 북한이 대남적화 통일의 환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에 반비례해서 우리는 평화무드에 지나치게 쏠려 자기중심과 현실감을 잊고 있는 경향이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지적할만게 아니라 당국 스스로 반성할 필요도 있겠다.
과거 안보문제의 정치적 남용에 이어 국민의식 조정기간을 염두에 두지않은 성급한 북방정책 추진,그리고 민주화 과도기의 국가지도력 부족과 기강해이에도 두루 원인이 있다.
간첩들이 그동안 서해안을 통해 제집다느드나 했는데도 적발해내지 못한 당국이 오로지 국민만을 나무랄 수 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도 차제에 냉철히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통일열망이 뜨거울수록 자기 중심을 잃지말아야 북한의 엉뚱한 환상을 깰 수 있고,그럼으로써 오히려 남북화해와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통일염원과 교조적 공산 독재정권의 적화통일 공작조차 구별할 수 없고서야 무슨일이 성사되겠는가.
결과적으로 안기부는 이번의 최대 규모 간첩단 적발을 통해 당국이나 국민 모두가 냉철한 현실감각으로 자기 중심을 잡아나갈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렇게 될때 북한 정권도 우리 민주사회를 더 이상 얕볼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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