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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고질… 치유책 없나(도박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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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고질… 치유책 없나(도박병:4)

입력
1992.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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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오락성 잃은 「경마노름」/“한탕” 미련에 집 잃고 직장 잃고/30번 잃어도 “한번 맞히면…”/마권상한선 있으나 마나/한판 수천만원 날리기도『법에 걸리지 않게 복수하려거든 경마장에 데려가라』

경마장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오가는 이말은 사실상 경마가 도박으로 변해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때인 지난 22년 조선경마구락부 결성으로부터 시작된 경마는 현재 매년 3백만명 가까운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을만큼 외형상으론 대중적 오락이 됐다.

경기 과천시 주암동 35만평 부지에 자리잡은 과천경마장의 개장일인 매주 금∼일요일에는 하루평균 3만여명이 가득 들어찰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경마란 자제력을 잃지않을 경우 추리력·분석력 등을 동원해 적당한 돈을 걸고 짜릿한 승부감과 상쾌한 속도감을 즐길 수 있는 오락.

그러나 과천경마장과 서울·경기지역의 18개 장외TV경마장에서는 수백만원에서 크게는 수천만원의 돈을 단판에 걸고 눈에 핏발을 세우는 도박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이런곳에서는 다른 도박과 마찬가지로 전재산에 인생까지 날려버린 숱한 경마꾼들의 말로가 화제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달 검찰에 구속된 김모씨(43·새마을금고 전 전무)는 심심풀이로 시작한 경마로 패가망신해버린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지난 88년 7월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경마에 발을들여 놓았던 김씨는 곧 경마의 도박성에 중독되면서 부인 몰래 집을 판 뒤 월세돈조차 남기지 않고 몽땅 쏟아부었다.

거리로 내몰릴 지경이 되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김씨는 사업자금 명목으로 처가로부터 수억원을 빌려 이마저 다 날린데 이어 같은해 12월에는 급기야 자신이 다니던 새마을금고의 공금 5억5천만원까지 빼내 탕진했다.

경마도박을 시작한 뒤 반년도 채 못돼 김씨는 집과 가족,직장까지 모두 잃어버린채 감옥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파산한 뒤 온갖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폐인처럼 경마장 주변을 떠나지 못한채 떠돌아 다녔고 사위탓에 평생의 재산을 날린 김씨의 장인은 지난 6월 자살해 버렸다.

그러나 이 정도는 경마장 주변에선 그다지 대수로울 것도 없는 사례이다.

빌딩 내부 실내장식사업을 하는 조모씨(45·경기 의정부시)는 한때 5개 업체를 거느릴 정도의 준재벌급 기업가였으나 김씨와 비슷한 시기에 경마도박에 빠져들었다가 단 3년만에 30억원을 날리고 무일푼으로 파멸했다.

경마도박은 마치 히로뽕과 같은 중독성을 갖고있어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인생이 끝나기전까지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모씨(57·서울 은평구 신사동)는 파산직전 이를 돌이킨 드문 경우다. 그러나 이씨도 정신을 차리기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과 수십억원의 재산을 허비해야했다.

지방토호의 외아들로 군장교를 지냈던 이씨는 군동기생들이 근무하던 마사회에 드나들면서 경마를 배웠다가 「본전생각」으로 차츰 도박꾼이 돼갔다.

이씨는 『경마꾼이 되면 마치 감기환자가 기침을 참을 수 없는것처럼 자기통제력을 상실해버린다』며 『제대로 딴적이 기억나지 않는데도 수십년 발을 빼지 못한 것은 30번을 잃어도 단한번에 이를 만회할 수 있다는 착각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비참한 처지가 되고나서야 경마도박의 미몽에서 깨어났으나 스스로의 몸을 결박해야하는 등 극심한 금단증세로 고통을 겪었다.

경마는 주로에서 한번에 말 10∼12마리가 경주를 하게되는데 우승마를 맞히면 돈을 배당받는 「단승식」,1·2·3등중 하나만 맞혀도 되는 「연승식」,1·2등말과 순위까지 정확히 맞혀야하는 「복승식」 등 3가지 방법으로 운영된다.

어차피 도박성을 띠고있건 하지만 현재 마사회법에 규정된 1인당 마권구입 상한선인 20만원을 지킨다면 그다지 큰 위험은 없다.

그러나 교묘한 방법으로 한번에 수백만원씩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고 조직폭력배가 창궐하고 있으며 최근 사건에서 보듯 마사회 관계자들과 결탁해 승부를 조작,경마를 대규모 도박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현재 경마장은 정부공인 상습도박장인 셈이다.

◎한번 맛들이면 “수렁속에”/폭력배 운영 사설경마도 판쳐/등록마감후 3분간 마권팔아/연 2백60억 챙겨 “검은 돈 온상”

경마도박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일반화 되어있는 것은 조직폭력배들이 장악,운영하고 있는 사설경마이다.

정상적인 경마는 고객이 마권구매표에 예상마와 거는 액수를 기압,돈과 함께 마권발매소에 제출해 마권을 받은 뒤 경기가 끝나면 성적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 식이다.

그러나 폭력배들은 버젓이 마권발매소 앞에서 자신들의 사인 등 특별한 표시를 한 마권을 발행,별도의 경마를 운영한다. 여기에는 20만원의 구입한도액이 없어 무제한 걸 수 있다.

과천경마장과 서울·경기지역의 18개 장외TV경마장에는 예외없이 이들 조직폭력배들에 의한 사설경마가 성행하고 있다.

지난달 첫째주 일요일 상오 과천경마장 3층 6번창구에도 험상궂은 거구의 청년 8명이 공개적으로 사설경마판인 이른바 「마떼기」판을 벌이고 있었다.

폭력배들의 관장 구역은 엄격하게 정해져 있으며 규모가 큰 과천 경마장은 전체적으로 ㅇ파가 장악,각층별로 군소조직을 고정배치하는 식으로 사설경마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3층을 맡고있는 이모파의 조직원(30세 가량)은 미처 마권등록을 못한 고객과 단골 꾼들에게 사설마권을 팔았다.

마권등록이 마감되고 경주가 시작되기전 3분이 이들에겐 황금의 영업시간이다. 이때는 청원경찰이나 경비원들이 흥분한 관객들이 주로에 뛰어들어 일어나는 사고를 막기위해 모두 주로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폭력배들은 마사회측의 단속이 심해지자 지난 4월부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현장거래대신 마권만 돈을 받고 나눠주고 배당금은 경마후에 외부에서 계산하는 사후 정산방법을 쓰고 있다.

이날도 이들은 사설마권 구입자들에게 하오 6시30분 인근 과천시내 S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일일이 일러주었다.

이모파는 이날 총 2천여만원어치의 사설마권을 팔아 75%를 당첨자들에게 분배해주고 평소 수준인 5백여만원을 챙겼다.

같은날 상오 9시 성동구 뚝섬 TV장외경마장 4층 특실5호.

문신 새긴 팔뚝을 걷어붙인 김모·박모파 폭력배 20여명이 자신들이 만든 우승마 예상지를 특실의자 곳곳에 펴놓고 「꾼」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단골이 아닌 「일반고객」들의 자리를 차지하려하자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딴곳으로 가라』고 쫓아냈다.

이날 이런식으로 모두 7백만원을 챙긴 이들은 『오늘은 성적이 괜찮은편』이라고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이들이 경마도박으로 챙기는 수익은 마권판매액의 25%로 마사회 발행의 정식마권 수익률 13%에 비해 2배 가까우며 연간 2백60억원에 달해 최근 조직폭력배들에게 가장 중요한 돈줄이 되고있다.

심지어 이들은 고정고객을 확보키 위해 배당액을 최고 1천배까지 높이고 많이 잃은 고객들에게는 위로금까지 주며 격려하는 등의 유인책을 쓰기도 한다.

경마꾼들은 사설경마외에 교묘한 방법으로 마권구입 상한액을 초과하는 마권을 구입,거액의 도박을 한다.

행동대원 5∼10명씩을 일시에 풀어놓고 5백만원까지의 마권을 일시에 구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데 경마장 주변에서는 이 수법을 「피아노치기」라고 부른다.

또 잘아는 마사회 직원이나 매표원들을 통해 20만원짜리 마권을 한번에 수십장씩 구입하기도 한다.

최근 경마승부조작 사건수사를 맡았던 한 검찰관계자는 『사설마권 구입이나 피아노치기 등을 통해 도박을 하는 점문꾼들이 경마팬들의 3분의 1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경마를 도박으로하는 꾼들이나 단골고객의 승률을 높여 신뢰를 쌓으려는 조직폭력배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조교사 등 마사회 관계자들과 끈을 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마 도박은 경마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마에서 거액을 잃어 난감하게된 사람들이나 요행히 큰돈을 거머쥔 사람들은 만회심리나 더큰 한탕을 노리는 심리로 인해 거의 예외없이 일반노름판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때문에 경마장 주변에는 이들만을 노리는 전문도박꾼들이 득실거린다. 사기도박꾼들이 주말마다 파견하는 「삐끼」들은 경마장밖에 고급승용차들은 대기시켜 놓고 손님을 끌기때문에 「자가용족」이라는 은어로 불린다.

이들에게 걸려든 경마꾼들은 전문도박장인 「하우스」로 인도돼 「반받으라 도리짓고땡」 「고스톱」 「하이로」 등의 노름판에 가담하게 되는데 판이 끝날때까지 절대로 일어설 수 없다.

사실상 경마로 돈을 탕진했다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배보다 배꼽이 더큰 사후노름판에 끼여들었던 경우이다.

결국 경마는 그자체가 심각한 도박판으로 변질돼 있을뿐 아니라 또다른 전문도박판으로 가는 입구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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