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 변영태.건국이래 고위직을 지낸 몇안되는 훌륭한 인사중에서도 대표적인 인사를 든다면 단연 일석을 꼽아야 할 것이다. 그의 한 생은 애국 우국과 청렴 강직 개결 성실의 한길이었다.
외무장관에 이어 국무총리 재임은 개헌에 의한 총리제 폐지로 반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기세 등등했던 자유당 간부들과 국회의원들의 이권청탁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가 하면 전 공무원들에게도 외부청탁엔 일체 불응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려 자유당의 미움을 샀다.
불법과 불의와 치부를 원수처럼 여겼던 일석은 훗날 『나는 평생 어떤 공직도 원한적이 없지만 일단 일을 맡은뒤엔 새벽마다 어제 한 일중에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없었는가. 오늘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묵상했었다』고 술회했다.
총리를 그만둔 후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했던 그는 4·19가 일어나 이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자리에서 입각을 거절하고 인책하야 및 자유당과 절연할 것은 직언하기도 했다. 4·19가 난지 두어달후 필자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시국담을 들으러 서울 신당동 골목안의 일석을 방문한 적이 있다.
허름한 누옥이었다. 「참으로 청빈한 분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일석이 헤어진 군용담요를 깔고 앉은 채 『학생들이 피흘려 민주주의를 되찾아 주었으나 기성정치인들은 대오 각성해서 깨끗한 정치를 해야한다』고 침을 튀겨 가며 역설하던 모습이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지저분한 정치와는 영원히 담을 쌓을 것으로 여겼던 일석이 5·16 군정후 63년 가을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 선거에 정민회란 단체를 만들고 입후보하여 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출마변을 듣고 모두가 그분의 뜨거운 우국적 신념과 소신을 새삼 음미했다.
『나에게는 3가지 평생소원이 있다. 첫째는 죽기전에 공명선거를 보자는 것이다. 헌법이 수백조로 길어진들 어떠랴. 투표후 그 자리에서 개표하는 등 부정방지 절차를 헌법에 조문화해야 한다. 둘째 국민의 뜻이라면 어떤 자리도 미련없이 내놔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소원은 정권을 이권으로 보며 개밥 싸움 하는 꼴을 영원히 추방하고 당당한 경쟁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결국 빈손으로 뛴 대선에서 기십만표만을 얻어 낙선하자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날부터 생계를 위해 시사영어학원에 출강했으며 69년 붐 줄여서간 북아현동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별세했다. 당시 필자는 그의 일대기를 쓰면서 「인간의 향기」라는 말을 썼다. 「변 고집」이라고 불릴 정도로 평생을 청렴과 강직과 공의만을 지티며 살아온 그에게서 국민들은 존경심과 함께 뜻깊고 고고한 향기를 접하게 된다고 썼던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이 각당영수들과 중립내각 구성을 위한 협의에 착수하면서 과연 새총리에 누가 발탁될 것 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무려 15명의 인사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역대정권에 자의·타의로 징발되어 정치오염으로 국민의 사표로서 존경할만한 원로와 현사들은 찾기 어려웠던터에 재상후보로 15명이나 거명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다.
우선 그분들이 행정권을 지휘하여 나라의 국운을 좌우하게될 오는 대선을 역사와 국민 앞에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공정하고 떳떳하게 치를 수 있는 경륜과 능력을 지녔는가 하는 문제다.
여기서 필자는 오늘의 시국과 국민적 여망을 감안할때 새총리는 일석과 같은 확고한 신념과 정신,즉 어떠한 눈치도 보지않고 압력과 회유에 굴하지 않으며 오직 대의에 입각,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여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등,공명선거 원칙만은 하늘이 무너져도 사수하는 자세를 지닌 인사가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훌륭한 총리와 일부 선거장관이 새로 기용되었다고,총리가 중앙에서 「공명선거」의 목소리만 높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9·18정신을 어김없이 구현한다는 노 대통령의 확고한 공정선거 실천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되풀이 강조하거니와 노 대통령은 새 내각이 발족하는 시점부터 새 총리와 새 행정부에게 원만한 선거분위기 조성,선거인 명부 작성,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엄격한 단속,대대적인 국민계몽,관의 엄정중립,깨끗한 투·개표관리 등 선거에 관한 모든 행정권을 위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새 내각은 오는 대선을 단군이래 처음으로 관이 선거에서 손을 떼고 불법부정을 쫓아 국민적 축제의 한마당이 되게하는 「공명의 관리자」 「공정의 파수꾼」의 역을 맡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 그런 전권위임의 보장을 사전에 다짐해야만 국민과 대통령과 3당이 희망하는 훌륭한 인물을 선뜻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석이 필생소원이라던 「공명선거」를 뒤늦게나마 정말 볼수있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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