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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두나/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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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두나/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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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대통령은 중국방문을 마치면서 통일의 외적 장애요인이 모두 제거됐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때맞추어 최영철 통일원장관은 지금 남·북의 형세는 바야흐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남·북 연합」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같은날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회견한 야당의 김대중대표는 그가 20년래 주장해온 3단계 통일방안중 「느슨한 정부연합」 형태의 통일이 95년까지는 가능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역시 같은날,유엔 연설을 마치고 한국특파원들을 만난 북한 외상 김영남은,90년대 안에 연방제 방식에 의한 통일위업이 성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모두 지난달 30일 하루사이 국내외에서 나온,남·북의 책임있는 이들의 말이다. 겉으로 듣기엔 제법 장단이 맞는다.

그래서 핵과 이산가족 문제는,남·북 교류를 위해서 잠시 접어둘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재벌의 남포조사단이 가고,부총리가 가는 것이라 납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법이야 어찌됐건,북의 이인모노인 북송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평양 가는 길이 그처럼 뻥 뚫렸을까. 이 시점에서 왜 그 길을 그토록 서둘러야 하는 것일까.

20년전 7·4 공동성명에는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앓는다는 대목이 들어있다. 설명인즉,큰 도발은 전쟁이요,작은 도발은 무장간첩. 1·21 사태를 바닥에 깐 표현이다. 이에 이르기까지 박정희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북의 밀사 박성철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고,평양의 김일성은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렇게 하고도,아니면 그 그늘에서,저들은 땅굴을 팠다. 그리하여 공동선언의 합의는 사라지고 통일 3원칙만 남았다.

워낙의 묵은 일이라,7·4는 이제 「고사」나 다름없다. 그때 일을 오늘에 그대로 원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사」는 「고사」로서 더 요긴한 뜻을 지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요즘 남·북한 낙관론의 근거가 되는 문서들­남·북 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 등을 읽어보면,좀 찜찜한 구석이 없지를 않다. 장관급 거물간첩이 드나들며 조직했다는 「노동당 중부지역당」,김낙중 간첩사건 등이 바로 고위급회담 그늘의 「땅굴」이라는데에도 생각이 미친다. 그런데도 우리측이 이런 것 다 덮어두고,부속합의서 도출만을 서둔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우리 공안당국은,유엔회견에서 김영남이 이들 간첩사건을 두고 한 말대로 「소가 배를 잡고 웃을 일」(한국일보 10·1 석간 2면)이나 하고 있다는 것일까. 아무리 남·북 사이라도,할 말은 해야하는 것 아닌가.

사실,지난달 17일 제8차 고위급회담에서 어렵사리 합의·발효시킨 부속합의서를 읽어보면,따질 것을 따지지 않고 넘긴 구석이 여럿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화해합의서와 불가침합의서의 「부기」가 걸작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계속 토의한다」는 이 「부기」는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북측의 억지를 「현안」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를 빌미로 해서 북측이 「현안」을 계속 들고 나오면 어찌되는가. 20년전 경험대로,합의의 뜻은 사라지고 그 이전의 원칙만 구두선처럼 남는다.

불가침합의서에서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제10조)고 한 것도 마찬가지 같다. 서해 5도를 북측 관할해역속에 고립시킬 수가 없는 이상,이런 「현안」은 심각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그것은 휴전이후 우리가 차지했던 기득권에 대한 이의를 접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화해합의서의 언론조항도 문제다. 상호비방중지를 약속하면서 성격이 다른 「언론」과 「삐라」를 함께 꼽은 것이다. 이중 「언론」은 우리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통제하겠노라고 약속한 꼴이다. 그 결과로 자유언론이라는 우리 손발만을 묶을 염려가 있고,북측 시비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반면 「삐라」는 정부기간이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겠으나,초가을 서울거리에는 「불온선전물」의 신고를 당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지금도 서울 하늘에서 「삐라」가 떨어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 「삐라」가 고위급회담의 우리 대표단의 머리 위를 날아온 것이라면,이처럼 맹랑한 일이 어디 있을까.

물론 남·북 관계를 경직되게 볼 것만은 아니다. 유연할 수 있는데까지는 유연해야 한다. 요컨대는 북녘 사람들의 속마음을 어떻게 읽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펼쳐본 「로동신문」에서 눈에 띈 것은 다음 두건의 기명논설이다.

9월4일자에 실린 장문의 논설제목은 「추악한 친미 사대 매국노,희세의 민족반역자」다. 「로태우 역도」의 모든 경력을 짚어가며,조목조목 매도하고 「력사와 인민의 준엄한 심판」에 언급한 글이다.

다음 12일자의 글은 남한의 민주세력은 「대중투쟁단계」를 넘어 전략적 과업인 「정권전취를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제시된 방도는 야권 단일후보에 의한 「민주련합정부」다.

이 두 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남조선해방」이라는 노동당 규약의 반영이요,「노동당 중부지역당」의 뿌리,그리고 노 대통령의 「임기말」에 대한 북측의 인식이다. 짐작컨대 북은 「임기말」의 이쪽 마음을 넘겨 짚어가면서,정작은 「임기이후」를 요량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대남정책을 바꿀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서두를 까닭이 없다. 오히려 우리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 첫째는 남·북 관계에서도 시는 시요,비는 비라 하는 원칙이다.

지금까지 그렇지를 못했기 때문에,대통령의 임기말 들어서는 더욱,국민들이 헷갈린다. 정부가 너무 성과를 탐낸다는 의구심이 번진다. 김낙중·「중부지역당」 같은 허가 생긴다. 「상부통일전선」이란 말과 함께 기축외교를 걱정하게 된다.

이점에 대한 성찰이 생각을 가다듬는 요체다. 그런 뜻에서도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과의 합의보다 국민과의 합의가 더 절실한 것 같다.<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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