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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돌아왔구나/고령 사할린동포 귀국의 감회(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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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돌아왔구나/고령 사할린동포 귀국의 감회(사설)

입력
1992.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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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돌아왔다. 길고 한많은 세월이다. 사할린에 살던 독신 무연고 고령동포 76명이 29일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영주귀국을 위해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일정때 홍안의 청년으로 사할린에 끌려갔던 이들 동포들은 50여년만에 백발노인이 되어서야 조국의 품안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 감회가 깊고 가슴 뭉클하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사할린동포들이 고향 친지의 초청으로 일시 조국을 방문했거나,영주귀국한 일은 있었으나,국내에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무연고 노인의 영주귀국은 이번이 처음이다.무연고 고령 사할린동포의 영주귀국을 위해 기독교 감리회의 광림교회가 춘성군에 「사랑의 집」을 마련하여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은 매우 흐뭇한 일이며 무연고 동포의 귀국의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큰 뜻이 있다.

강제징용으로 동토 사할린에 광부로 끌려간 우리 동포들은 약 4만3천명쯤 됐다. 이들은 하루 12시간씩 추운 탄광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중노동을 해왔으며 더러운 허기와 추위에 견디지 못해 목숨까지 잃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망으로 사할린동포들은 고국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쁨으로 흥분을 가누지 못했으나 그것도 잠시뿐,소련군의 진주로 귀향길이 영영 막히고 말았다. 사실 일본은 사할린거주 일본인의 귀환엔 철저히 손을 썼고 1946년 11월 「소련지구 일본인 철수에 관한 일·소협정」이 체결돼 모두 귀환됐다. 한국인의 경우 일본정부는 사할린동포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의거,일본국적을 자동적으로 상실했다면서 그들의 귀국을 외면했다.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노동력으로 한국의 젊은이를 사할린으로 끌고간뒤 패망하자,국적조항을 들어 이제까지 우리 동포를 사할린에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둔 것은 잔인무도한 행위라고 규탄되어 마땅하다. 한일간의 현안문제 가운데 무엇보다 시간을 다루는 문제는 사할린동포의 귀환문제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사할린동포들은 몽매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그리며 백발의 노경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국세조사에 의하면 사할린동포들은 2∼3세가 늘어 7만명선에 이르고 있으며 3∼4천명이 고국땅을 밟기 위해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무국적을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같은 사할린동포의 처절한 귀국소망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귀소본능이며 중대한 인권문제다.

사할린동포의 귀환문제는 이처럼 절실한 문제이면서도 그동안 일본정부의 무책임과 우리 정부의 무성의 때문에 허망한 세월이 흘렀다. 노예사냥처럼 동토 사할린에 끌고간 일본정부는 귀환의 책임이 있다.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가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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