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상황은 늘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요즈음처럼 그것이 절실한 때는 없다.노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은 날이 갈수록 가정만 무성하게 하는 느낌이다. 논의들의 뒤끝에는 어김없이 「진짜라면…」이 따라 붙는다. 반응들도 다양해서 「무책임」에서 「돌파구」까지 갖가지다.
○공명선거는 기본
그러나 그 무성한 논의와 반응속엔 한가지 유보가 있다. 「이번 선거만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다면」이다. 우리 선거의 역사와 함께 있어온 해묵은 관권의 시비를 이번엔 끊고 누가봐도 공정속에서 대선을 치르는 계기가 될수만 있다면 「정당을 기반으로 당선된 대통령이,그것도 임기를 다보낸 막판에 와서 당을 훌쩍 떠난 해괴한 일」을 시비하지 않고 덮어 두겠다는 심산인 것 같다.
이런 심중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립내각이란 것이 모양새나 출발일뿐 이번 일의 전부일 수 없다. 그야말로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모양갖추기」에 너무 많은 시비와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탈당」의 진가는 오는 12월,혹은 그에 임박해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환영도 비난도 다 그때까지 유보해야 한다.
그 사이 정치권은 온통 달라붙어 이 「미지의 기회」를 참다운 돌파구로 만드는데 진력해야 한다. 그것도 해묵은 수법,사고방식이 아니라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신사고로 임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대통령과 3당에 그것을 바라고 있다.
탈당이란 새로운 사태가 있기전 정치관객인 국민들의 가장 큰 우려는 국회가 열리지 못하는 것도,단체장선거가 빨리 실시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레임덕」인가 누수인가 하는 정권말기 현상이 우리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져갔던 일종의 리더십공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현상을 최소화하며 권력이동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요,정치권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이 현상을 조장한,어느 의미에서 극대화시킨 곳은 다른데도 아닌 민자당 스스로였다. 지신의 위상도,책무도 무엇인지를 헤아리지도 못하고 「내부갈등」에 몰두했던 민자당은 이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6·29에서 그해 12월 대선에 이르던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5공이란 권위주의 정부가 지탱하고 있던 사회였지만 쏟아져나온 노사분규,유세장의 돌팔매,최루탄 등 감당키 벅찼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지금이 5년전과 같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나 못지않게 미지와 불확실과 가정들이 우리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또 한번의 각고와 결의가 요구되는 까닭이다.
우선 우리들의 목표를 이렇게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대선부터 잘 치르자. 이러려면 3당 대표회담을 시작으로 정치권이 지금부터 만들어내는 판세를 그들에게 맡기고 성의를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엉뚱하게 나가지 않는한 쓸데없이 훈수할 생각말고 깽판놓으려는 세력을 철저히 견제해야 한다.
○「탈당」을 돌파구로
「중립내각」이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혹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잘해도 본전찾기 힘든데」하며 손을 내저을 것이 아니라 우리정치의 역사적 전기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으로 선뜻 나서줬으면 한다. 우리사회도 이들을 「권력판에서 때묻히고 나온 사람」으로 결코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당들,특히 민자당의 결연한 의지 또한 필수적이다. 탈당이 말 그대로면 민자당은 공화당,민정당으로 이어온 30여년만에 처음으로 「관권의 동반 없는」 허전한 선거를 치르게 됐다. 오랜 체질 때문에 「설마」하며 관권을 향해 물밑손짓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의 관료체질은 그 속성 이상으로 해바라기성이다. 권력이 갈만한 곳이면 별 추파를 다 던지고 무슨 안시키는 일을 앞장서 할지 모른다. 이것을 단절시키는 책임은 당쪽에 있다. 김영삼총재의 결단은 그 핵심이다.
우리 머리속의 김영삼은 집권세력의 전단에 저항해온 야당투사이고 우리 눈앞의 그는 그 세력들의 수장이 되어있는 김영삼이다. 이것은 그를 오래동안 보아온 사람들에게 가장 큰 혼란이요,주저였다. 「탈당」은 그래서 위기가 아니라 기회인 것이다.
뉴YS가 가능한가는 전적으로 그의 실천의지에 달렸다. 그것은 노 대통령,관권과의 처절한 단절에서 가능할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세기적 대업을 이루고도 실각의 쓴 잔을 마셔야 했던 고르바초프는 끝까지 「당을 통한 개혁」을 고수한 것이 실패의 주인으로 되어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70년 굳어진 공산당을 버리고 국민을 상대로 개혁을 추진했던들 그 자신이나 러시아의 지금은 달라졌으리라는 아쉬움이 지금껏 있다.
「탈당」이후 가장 무성한 말이 「노심이 문제다」이다. 우리 대통령이 이토록 불신을 받는 것은 먼저 우리 국민들의 불행이다. 그러나 곰곰이 되돌아보면 중간평가에서 경선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국민과의 약속을 흔쾌히 지킨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민주화·북방정책이란 업적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개연성이 너무나 많다.
탈당과 남은 5개월이 그래서 중요하다. 민자당에 주문했던 것과 똑같은 이치로 당과의 진정한 단절이 요구된다. 「탈당」을 「돌파구」로 만들 수 있어야한다.<편집담당 상무>편집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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