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박물관이 약 4만개를 헤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구분되어 있지만 서양에서의 박물관(Museum)은 두가지를 합친 개념이다.이 박물관이 미국에 약 4천6백개,구 서독에 2천2백개,구 소련에 1천5백개,프랑스에 1천4백개,이탈리아에 1천3백개에 미술관이 20개 정도다. 도시별로는 뉴욕에 박물관이 1백50개,파리에 82개,도쿄는 순수 박물관이 1백26개에 미술관이 62개인데 서울은 박물관 65개에 미술관은 7개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원칙적으로 자료관,기념관 등은 물론 동·식물,수족관,어린이대공원 같은 것까지 포함되고 나라마다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통계만으로는 미술관이나 순수박물관의 비교가 어렵기는 하다. 그런대로 한국의 수준을 짐작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어느 나라의 어느 도시나 관광안내 버스를 타면 맨먼저 박물관 앞에 내려놓는다. 파리에서는 루브르,런던에서는 대영박물관,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서는 에르미타즈…. 박물관은 그 나라의 대문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야 그 나라에 들어서는 것이다. 거기 역사가 축시되어있고 문화가 방부되어 있다. 한 나라의 불륨은 역사책의 부피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박물관의 중량에 달렸다. 박물관을 찾아가는 것은 그 나라 입문의 제1과다.
이중 미술관만 놓고 볼때,서양의 박물관은 미술관 아닌 일반 박물관이라도 대개 미술품이 함께 진열되어 있고 수시로 미술전시회를 열기 때문에 미술관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미술관이 통틀어 20개라는 숫자는 너무 빈약하다. 서울을 제하면 전국에서 13개 시군에만 크고 작은 실내의 미술관이 있을 뿐이다.
역사적 유물이나 고전 고대의 미술품들에 대한 수집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때 이탈리아에서 인문주의 교황들의 손에 의해서였다. 그후 유럽 각국에서 왕족과 귀족들이 예술가들의 비호자가 되면서 다투어 모아들였다. 미술품을 가진다는 것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지자 1802년 개관된 것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왕궁이 미술관이 되고 왕이 비장하던 예술작품들이 일반공개 된것은 미술관이 민주주의와 역사를 같이 한다는 말이 된다. 런던의 대영박물관이 문을 열고 최초의 전용미술관으로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건물이 새로 서고한 것도 19세기초 시민사회가 형성되면서다. 미술품을 사서 수장했다가 미술관을 꾸미는 것은 이제 부유한 시민계급이었다. 1877년에 나온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에는 주인공의 결혼 축하객들이 피로연후 다함께 르부르로 그림 구경을 가는 장면이 나온다. 미술관은 그만큼 대중화 되어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도시들의 미술적 환경은 19세기의 유럽을 연상시킨다. 미술관 하나 없는 쓸쓸한 거리풍경을 미화시키자면 우리도 「부유한 시민」에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림을 너무 높은데 건다. 미술관은 대가들의 명작만 모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 명작들을 수집한 세계적 미술관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또 세계적 명작 한점 변변히 없는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이 분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높게만 보는 과욕으로는 미술관에 넣을 그림이 없다. 서양 미술사의 명화들을 유럽에 빼앗긴 미국의 미술관들은 무명작가들의 작은 컬렉션에서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 현대미술의 보고가 되었다. 이미 평가된 값비싼 작품만 탐내서는 새로운 미술관이 생겨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7천명의 화가가 있다. 미술관은 이들부터 수용해야 한다. 지방 미술관은 그 고장출신 향토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는 곳이다.
일본에서는 경제신장과 함께 공연장으로서의 문화회관이 전국적으로 건설되고나자 미술관과 박물관이 각지에 서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근년들어 영화나 연극의 관객이 줄면서 미술관의 입장객이 늘어나는 경향이다.
문화의 지방분산화가 고창되는 시대다. 미술관의 확산이 그 욕구에 응답할 것이다. 미술관외에 또 일반 박물관이 있다. 각 지역의 박물관이야말로 그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박물관은 우리나라가 수적으로 제법이다 싶겠지만 알고보면 그중의 대종을 이루는 것이 일반인의 이용도가 낮은 대학부설 박물관이나 기업체의 전시관 등이다. 박물관만 해도 우리는 덩실한 건물부터 생각하기 쉽다. 그 이전에 시나 읍에서는 문화원이나 시청·군청의 일실,면단위로 내려가면 마을회관이나 학교시설의 일부에 사료관을 차리는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거기 그 지방의 지역사,생활사,문화적 유물 등 향토사를 담는 것이다. 전북 도내의 18개 초·중교에 설치된 사료관은 그 시범이 된다. 학생들은 세계사는 잘 알지만 자기 고장의 역사는 모른다. 자기 고장을 모르고는 세계를 안다 할 수 없다. 내고향이 세계의 시발점이라는 자부심이 결국 향토 박물관을 키운다.
개인의 사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신설을 부추기려고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전면개정해 지난 6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으나 신청자가 별로 없다. 법내용이 좀 인색하다고는 하더라도 사회교육장으로서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설립은 본시 필란트로피(자선)의 영역이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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