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21일 금융실명제 실시를 무조건 찬성하고 구체적인 실시시기와 방법은 정부의 결정에 따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단계적 실시」를 주장,금융실명제의 실시에 걸림돌로 인식돼온 전경련의 태도변화는 초가을의 소슬바람처럼 신선하다.우리 사회는 지금 「검은 돈」이 너무나 많다. 반드시 「검은 돈」과 일치하지 않으나 지하경제를 움직이는 「얼굴없는 돈」이 약 7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총통화의 약 10%나 된다. 우리는 이 경제의 「법과 질서」를 희롱하고 있는 「가면을 쓴 돈」의 가면을 벗길 것을 얼마나 오랫동안 주장해왔는가. 82년 명성사건,이철희·장영자의 대형 금융사고에서부터 최근의 정보사땅 사기사건에 이르기까지 권력형 비리나 비리형 대형금융사고에는 언제나 가명,차명의 「검은 돈」이 매개되어 왔다는 것을 봐왔다. 또한 정치자금도 「얼굴없는 돈」으로 은폐돼왔다는 것이 최근 드러났다.
정부와 정치권은 지금까지 금융실명제의 필요성이 제기될때마다 「시기상조」를 이유로 실시를 미루어 왔다. 심지어는 금융실명제 실시를 주장하는측을 실물경제를 모르는 순진한 이론파 내지는 과격한 정의파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또한 일본도 아직 실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들어 연기를 당연시 해왔다. 정부와 정치권,특히 정부는 연기의 사유만을 되풀이하여 늘어놓았지 금융실명제 실시를 위한 여건이나 분위기 조성에 손끝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재계가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한 무조건 지지를 공표한 이상 무슨 구실로 연기 명분을 찾을지 궁금하다.
재계의 이번 조치는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깨끗한 선거」 「돈 안드는 선거」의 추진의지와 관련돼 있다. 재계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실시에 반대해온 것은 재계가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다. 정부는 자금의 일시적인 유통으로부터의 퇴장이나 해외도피 등이 사채시장,제2금융권,은행 등 광의의 금융시장 등에 미칠 영향과 부동산 투기조장 등을 우려한 것이고 정치권은 음성적인 정치자금의 필요성이 지속돼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12월의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금융실명제의 실시를 공약하고 있다. 김대중 민주당 대표와 정주영 국민당 대표는 즉각 실시를 주장하고 있고 김영삼 민자당 총재도 임기내의 완전실시를 약속하고 있다.
금융실명제는 82년 명성사건직후 정부에 의해 입법화,국회에까지 제안됐다가 86년까지 5년간 시행이 보류됐었다. 노태우대통령은 87년 선거에서 공약사항으로 내세웠다가 90년 시행직전에 연기 해버렸다. 중요한 파기다. 현 정부는 어차피 시간이 없다. 차기정부의 실천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현 정부는 지금까지와 같은 금융실명제에 대해 부정논리를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긍정논리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경제정의의 확립 없이는 이제 더 이상의 경제발전은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