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감소·증시침체 불가피”/“검은돈 차단·탈세 원천봉쇄”경제적 충격이 크다는 이유로 실시가 유보되어온 금융실명제가 다시 쟁점화되면서 경제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실명제 실시의 최대 거부세력이었던 전경련(재계)이 무조건 찬성한다며 실시시기와 폭에 관해서는 정부 뜻에 따르겠다고 공식입장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실명제 실시의 걸림돌이 완전히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야당과 경실련 등 사회단체도 한목소리로 실명제 조기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금융실명제는 과연 경제 개혁론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경제부조리를 없애고 세상을 공평하게 하는 만병통치약인가. 정부 당국자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젓고 있다. 재무부의 한 당국자는 『실명제 실시의 유보를 주장하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개혁반대론자라도 되는 것처럼 매도되는 현실이지만 지금 단계에서 실명제를 실시할 경우 해외자금도피 저축률 감소 실물투기 증시침체 사채시장마비 등으로 엄청난 경제혼란이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개혁이라는 달콤한 명분과 경제혼란이라는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개혁론자에게는 향수가 돼버렸고 현실론자에게는 극약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실명제이다.
5공과 6공 정부 모두 매력만점의 이 실명제를 경제 치적으로 내세우려 했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실명」시켜버린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이 시사해주듯 이 제도의 장점은 굉장하다.
우선 정치자금 뇌물 사채 비자금조성 음성소득 등 검은 돈의 유통을 차단시킬 수 있다.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려면 일일이 현금거래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따른다. 탈세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어 세수가 크게 늘어난다. 경제정의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실명제 실시의 메커니즘과 실체를 살펴보면 이 제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은행예금 주식투자 등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해야한다. 지금처럼 세금을 절세하기 위해 남의 이름을 빌려(차명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종합과세 방식에 의해 이름을 빌려준 사람에게 세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이 또한 어렵다. 국세청의 컴퓨터 버튼만 누르면 자금추적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적은 액수의 돈이라도 수표나 어음으로 받아 자기 예금계좌에 넣었거나,정당한 소득이라도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은 것은 모조리 적발된다. 우리 경제에서 아직도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하경제가 와해되면서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89년 재무부 금융실명 준비단이 추계한 우리나라의 지하경제규모는 88년 기준 약 23조원으로 국민총생산(GNP)의 19%에 이르고 있다.
일본의 자민당도 공평과세 실현을 위해 지난 80년초 실명제를 실시키로 하고 그린카드제를 입법화했으나 예상되는 부작용이 너무 커 결국 포기하고 말았을 정도이다. 신중론자들은 『구 소련이 시장경제 제도만 도입하면 경제개혁이 제대로 될 것으로 판단,급격히 시행하다 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며 『구조조정기의 실명제 실시는 자칫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지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런 속사정을 잘 아는 전경련이 실명제 실시를 주장하며 공을 정부에 던진 배경이 더욱 궁금해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개혁이 대세인 만큼 실명제 실시는 이제 시간문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실시폭과 방법시기 등의 결정만 남았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은행예금의 실명화율은 91년말 98.,6%(금액기준)에 이르고 있지만 이 가운데 차명이 20∼30%에 달해 진짜 실명은 약 70∼8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백만기자>이백만기자>
□실명제 일지
82· 7· 3 실명제 83년 실시 발표
8·17 민정당,가명예금에 대한 자금출처조사 불문 등 보완대책 발표
12·23 민정당,86년이후로 실명제 연기하는 내용의 수 정안 국회제출,재무위 통과
88· 7·29 정부,금융실명제 91년 전면실시 발표
89· 4·11 금융실명거래 실시 준비단 재무부내 설치
90· 4· 4 이승윤부총리(당시),금융실명제 실시유보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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