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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화촌/김성우(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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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화촌/김성우(문화칼럼)

입력
1992.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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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은 문화를 담는 용기다. 한나라의 각종 문화공간의 총계는 그 나라 문화의 크기를 재는 한가지 기준이 된다. 그릇에 넘쳐 흘러 미처 다 못담기는 문화도 있을 수 있고 그릇에 채 차지 않는 문화도 있을 수 있으되 대체로 그릇의 용량이 문화의 용량이다. 문화공간은 그 안에 담기는 것만 문화가 아니라 용기 자체가 문화라 문화의 총량을 계량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문화공간은 그 나라 문화의 현상에 그치지 않고 지표이기도 하다. 문화는 문화공간을 밀고 문화공간은 문화를 끈다. 그러므로 문화공간은 문화적 총역량의 바로미터가 된다.우리나라 문화시설의 크기는 얼마만할까.

최근 문화부는 전국 문화공간의 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를 내놓았다. 공연장·전시장·복지회관·문화전수회관·문화원·도서관·박물관 등의 현황을 파악한 것이다. 대수로울 것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통계자료 하나도 그동안 제대로 나온 것이 없었다. 그만큼 문화의 실상에 무관심했다. 그것이 곧 우리의 문화의식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조사결과를 자세히 들여다 보노라면 있는 것만 적혔지만 없는 것이 더 눈에 띈다.

우선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 시립박물관이 없다. 2년뒤면 정도 6백년이 되는 서울이라는데 그 6백년의 수도사는 맥락을 잃고 뿔뿔이 흩어진채 토막마다 미아처럼 어느 노천에서 비를 맞으며 삭고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에는 문화원이 없다. 12개구나 되는데 어느 한구에 따로도 없다. 문화의지의 실종이다. 전국의 시단위 이상 도시 가운데 경기도의 신생 몇개시를 제외하고는 문화원을 안둔 곳이 부산 뿐이다.

부산을 포함한 5개의 직할시중 광부 말고는 미술관이 있는데가 없다. 외국에서는 미술관 없는 대도시란 그 황량한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부산과 대전은 또 구민회관이 한군데도 없는 직할시다. 서울은 22개구중 12개구에 구민회관이 있고 5개구는 건설중이다. 구의회가 시의회와 다르듯이 구민은 시민과 다르다.

인구 40만의 경남 마산시에는 큰 공연장이 하나도 없다. 2백석 미만짜리 소극장이 3개 있을 뿐이다. 시민회관 조차 안세워졌으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영화관에서 들어야 할 판이다. 대도시로서의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읍단위는 차치하고 전국 68개의 시단위 도시중 현재 문예회관을 건설중이거나 시민회관이 있는 곳을 제하고도 공연장이 전무한 곳이 15개시다. 결석자처럼 이 도시들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경기(19개시중) 미금·시흥·군포·의왕·하남 ▲강원(7개시중) 태백 ▲충남(5개시중) 대천 ▲전남(6개시중) 여천(1백석짜리 소극장 1개 있음)·동광양 ▲경북(10개시중) 점촌 ▲경남(10개시중) 마산·진해·김해·밀양·장승포.

충북(3개시) 전북(6개시) 제주(2개시)에는 시마다 모두 있고 비율로 보아 경남이 제일 후진이다.

소극장은 시단위에서는 청주가 5개로 가장 많고 충남에는 시군을 통틀어 한군데도 없다.

화랑이 있는 시는 20개다. 그중 수원·청주·전주가 5개씩,목포가 4개로 많다.

공연장만 놓고 볼때 우리나라 전국에는 영화관을 제외하고 소극장과 시·구·군민회관을 합친 것이 2백84개다. 일본은 공항홀이 1천4백개나 된다.

프랑스는 파리에만 극장이 48개 있다. 「카페 테아트르」라는 소극장이 따로 1백25개를 헤아린다. 서울은 중간규모 이상의 공연장이 도합 28개요 소극장은 35개다.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말로의 문화상시대에 문화센터를 나라전역에 설립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성당이 연주회장으로,창고가 극장으로 쓰인다.

문화시설은 문화활동의 거점이다. 문화센터는 「현대의 성당」이라 일컬어진다. 문화는 새로운 종교가 되어간다. 교회가 서듯 마을마다 문화의 포교장이 자꾸 들어서야 한다.

문화공간이 없는 지역은 무의촌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불편한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무문화촌이 아직도 턱없이 많다. 그나마 시단위 정도에서는 공연장이라도 정비되어 간다. 그러나 신축되는 문화회관들을 보면 맹목적인 거대화 경쟁이다. 무턱 이웃도시보다 커야 한다. 그러다보니 건물의 하드웨어만 생각하지 그 안에 집어넣을 소프트웨어는 미처 고려하지 않는다.

문화공간은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로 그쳐서는 안되고 문화를 생산하는 장소로 인식전환이 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하드웨어보다는 무엇을 위한 시설인가하는 자문이 앞서야 하고 그때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노력이 따른다. 자연히 한 지역의 예술단체의 육성과 지원에 소홀할 수 없게 된다. 문화의 향수능력을 기르는 것은 문화의 생산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문화공간의 확충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문화행정에 있어서 선결과제인 것은 틀림없다. 문화정책의 기초요 제1단계다. 우리나라로서는 이 1단계의 완성이 아직 멀지만 어서 넘어서야 한다. 다음단계는 행정의 시각을 문화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행정의 문화화다. 그러지 않고는 버젓한 문화공간도 이농한 농가처럼 공가가 되고 만다.<본사 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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