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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초강경에 YS 한발 후퇴/당정 힘겨루기서 수습까지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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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초강경에 YS 한발 후퇴/당정 힘겨루기서 수습까지 막전막후

입력
199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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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재판” 우려 배수진 공세/정/“극한 대립땐 공멸” 개각연기 수용/당연기군 관권선거 사건의 수습을 놓고 지난 13일부터 긴박하게 벌어진 청와대와 민자당간의 힘겨루기는 18일 노태우대통령­김영삼총재의 회동에서 결착이 났다.

총재직 이양이후 여권의 권력중심이 급격히 이동하는 상황에서 빚어진 이번의 「한판승부」는 제2이동통신 파문으로 생긴 노­김간의 앙금이 채 가시기전에 벌어지면서 한때 여권 내부에서 파워게임의 형태로까지 발전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6일간 여권내부에서 벌어진 막전막후의 뒷얘기를 간추려 본다.

▷시발◁

지난달 31일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양심선언이후 침묵을 지켜오던 김 총재가 수습의 첫 행보를 내디딘 것은 추석연휴 끝날인 13일이었으며 김 총재는 다음날로 예정됐던 3당 수뇌회담 연기를 제의.

김 총재가 이날부터 측근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내비친 대청와대 카드는 기초단체장 선거를 수용한다는 것이었다는게 중론. 그러나 정가에서는 김 총재가 단체장선거 카드와 함께 처음부터 「선거중립내각」 카드를 함께 갖고 있었다는 후문.

어쨌든 김 총재의 단체장선거 수용의사는 참모중 일부와 비선 자문그룹으로부터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즉각적으로 청와대의 반발을 샀던 것은 자명한 일.

이 때문에 청와대측 요구로 월요일인 14일 저녁 정해창 비서실장 김중권 정무수석과 김영구 사무총장 등이 참석하는 긴급 당정회의가 긴박한 분위속에 열렸고 이 자리에서의 중론은 연내 실시 불가였다는 후문.

▷전개◁

청와대 및 당내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김 총재는 15일 아침 『내일 아침 9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결심을 굳혔고 이에 중재에 나선 정부측 고위인사가 전화로 『우선 당론부터 모아보라』고 요청했다는 것.

이에 따라 김 총재는 이날 하오 H호텔에서 김종필대표 박태준 최고위원과 회동,단체장선거 수용의사를 타진했는데 두사람은 한결같이 『당이 깨진다』며 극력만류했고 이에 김 총재는 또하나의 카드인 「선거중립내각」쪽으로 급선회했다는게 정설.

다음날인 16일 아침 김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주내 선거중립내각」 방침을 밝히면서 그 내용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측근들은 이를 총리까지 포함하는 대폭 개각으로 해석했는데 정작 김 총재는 이를 부인하는 대신 함구령만 내리는 다소 모호한 태도.

하지만 이전까지의 당정협의 과정에서 『연기사건의 수사종결후 문책성 개각이 필요하다』는 원칙론에는 당정간 합의가 있었으나 한걸음 더 나아가 선거중립내각이니 주내 단행이니 하는 것은 전혀 사전조율이 없었다는게 정설.

때문에 이는 연기사건으로 빚어진 불리한 정국상황을 반전,대선판세를 유리하게 이끌어 보려는 김 총재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전법으로 이해됐고 『집권당 총재와 대통령후보라는 책임있는 위치에서 개각을 마무리짓겠다』는 김 총재의 말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대부분 관측.

▷반전◁

청와대측이 상도동쪽의 이상기류를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15일 김 총재 측근들로부터 안기부장을 포함하는 개각설이 흘러나오면서 부터.

노 대통령은 이날낮 이춘구 이한동의원을 불러 당내 동향을 청취하고 청와대와 상의도 없이 단체장선거 수용·개각 등이 거론되는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는 후문.

김 총재의 16일 기자회견 직후 청와대 참모들간에는 『총리가 국가 중대사로 평양에 가있는데 경질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더이상 말릴 수 없다』면서 자폭론까지 제기됐다는 것.

이와함께 당내외의 노 대통령 지지그룹에서도 김 총재에 대한 「원초적 불신」을 상기시키면서 반격을 개시해야 한다며 세결집을 시작했다는 설도 유력.

이날 하오 청와대 핵심참모 3∼4명이 극비리에 회동,반격의 대안으로 구상한 것이 「노 대통령 탈당­선거중립내각 구성안」.

이는 김 총재가 내세운 「선거의 공명성」이라는 명분을 수용하면서도 김 총재의 공세를 되받아치고 노 대통령의 위상을 지키려는 배수의 자세에서 나온 안이지만 그 출발은 제2이동통신 파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게 중론.

당시의 당정 갈등상황속에 여권 일각에서 노 대통령의 탈당을 건의했는데 이때의 탈당은 김 총재와의 「결별」을 전제로 「모종의 선택」과 맥을 같이했다는 것.

청와대측은 이때부터 다음날인 17일까지 각종 채널을 총동원,노 대통령의 탈당의지와 함께 『이번에는 대통령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 『주내 개각을 고집하다가는 김 총재가 말을 쓸어담지 못할 것』이라며 초강경의 자세를 상도동쪽에 적극적으로 전파.

▷결말◁

갈등상황으로 치닫던 당정은 17일 저녁 최종 절충을 가졌는데 이는 김 총재와 정부측 고위인사의 2시간에 걸친 단독 대좌였다는 것이 정설.

이미 최형우 서석재의원,황병태 전 의원 등 측근들을 통해 청와대측의 「단호한 결심」을 간접 전달받은 김 총재는 정부측 고위인사로부터 직접 노 대통령의 결심을 전해들었고 타협안으로 선문책 개각론을 제시했다는 후문.<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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